첫 일본 여행의 추억
스물다섯의 겨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마음을 나눴던 친구와 일본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때인 만큼, 후회 없이 먹고 마시고 놀자고 다짐했다.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시부야, 아사쿠사, 시나노마치 등을 돌았다. 4박 5일의 빡빡한 일정인 게 아쉽긴 했지만 두근 되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우는 시간들이 행복했다.
중간에 살짝 위기가 찾아왔다. 계획에도 없던, 취업을 하게 된 덕이었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 신분으로, 평소 다양한 욕설로 직원을 응원하는 사장님께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될까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자 마음먹고 용기 내어 친구와 여행 계획을 전했다. 한참 듣던 사장님은 짧게 "약속했으면 가야지, 다녀와라."라고 말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우리가 계획했던 일정대로 여행을 즐겼다. 그땐 참 즐거웠는데, 딱히 크게 기억나는 순간은 많지 않다. 다만, 딱 두 장면이 떠오른다. 첫날 시부야에서 먹었던 시원한 생맥주 그리고 침착하고 밝은 소녀의 피아노 연주.
내 눈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돈 주고 피아노 연주회를 왜 가는 걸까, 차라리 콘서트가 더 좋겠다."라고 혼자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연주 이후 내 생각은 달라졌다. 말 그대로 넋을 놓고 봤다. 처음 듣는 멜로디인데, 서서 듣다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빠져 들었다. 친구에게 빨리 저 소녀에게 다가가 지금 연주한 음악이 어떤 곡인지 알려달라고 재촉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친구의 일본어 실력도 그렇게 좋지 않았으니까.
둘이서 알아듣는 말이라곤 "애니, 애니"라는 말밖엔 없었다.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ost겠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부터 계속 귓가에 멜로디가 울렸다. 여행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제목 조차 알 수 없는 그 멜로디를 중얼거렸다.
한참을 찾았다. 다시 듣고 싶었으니까. 여행 이후 딱 3년 만에 원곡을 접할 수 있었다. 일본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히사이시 조 선생님의 연주곡이었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우리에게 친숙한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원령 공주>에서 나오는 ost였다.
노래를 듣는 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글을 쓸 때나, 마음이 울적할 때, 무언가 떠나고 싶을 때면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해당 음악을 공유하며 오늘의 짧은 글을 마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pcptqsSY68
살아남아라. 그대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