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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31. 2019

저물녘에 중얼거리다

나는 그렇게 시인과 시집을 접했다

언론 단체 간사로 일하던 때다. 함께 일하는 선배가 내게 시집 한 권을 건넸다. 정확히는 읽고 다시 돌려달라는 말이었다(그 책은 아직도 나와 함께 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책 제목은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1988년에 나온 이문재 시인의 첫 시집이었다. 같은 대학 동문 선, 후배 사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시인이기 전, <시사저널>에서 문화 기자로써의 삶을 먼저 접했기에 사뭇 느낌이 달랐다. 두근 되며 책을 펼쳤다. 솔직히 그때 나는 어려웠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지함을 탓했다. 옆에서 "이 시는 말이야~"라며 선배가 설명해주는데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해하고 싶은데, 이문재 시인의 시선을 고스란히 전달받고 싶은데 참 어려웠다.


이문재 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손으로 써보았다. 비교적 이해가 쉽고 울림이 컸던 두 편이다.

가만히 내 표정을 살피던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아침에 눈뜨면 시를 읽어.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이해가 되고, 내 감정에 따라 같은 시도 느낌이 달라져." 역시 명문대 국문학과 출신의 위엄. 알겠어요, 하고 다음날부터 그렇게 실천해보았다. 무엇보다 상당히 쑥스러운 아침이라 잠이 절로 달아났다. 그렇게 몇 개월 실천하다 말았다.


그래도 선배님 덕분에 이해도를 떠나 시와 가까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점에 들르면 시집 코너를 꼭 들린다. 그렇다고 반드시 구매할 요량은 아니지만, 훑어보면서 '나는 아직 시와 멀어지지 않았어.'라고 스스로 위안을 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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