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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Nov 19. 2019

마음이 허할 때, 찾아오세요

독자, 카페 <내 마음이 쓸쓸할 때> 그리고 글쓰기



책을 낸다면 어떤 분들이 내 글을 읽게 될까. 종종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우연히 친구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은 어떤 분들이겠냐?" 친구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한마디 했다. "마음이 허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네 글을 찾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되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이 친구는 지난 6월, 나와 함께 글쓰기 모임을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 당시 모임에서 알게 된 한분이 친구에게 다가와 "글쓰기 모임을 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허하고 무료했어요. 그런데 한결 나아졌어요. 특히 춘프카님 글 읽으면 뭔가 채워져요."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야 말해주냐고 항의했더니,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영화 <her>
'허하다 '의 사전적 의미

1. (마음이나 웃음 따위가) 허전하고 허무한 느낌이 있다.
2. 의지할 곳이 없어지거나 무엇을 잃은 것같이 서운한 느낌이 있다.
3. (대상) 헛되고 무의미하다.
4. 허전하고 쓸쓸하다.


'허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다 중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 세이클럽이라는 채팅 메신저가 유행이었는데, 요즘으로 따지면 카페 모임 등을 누구나 만들고 운영할 수 있었다. 정확한 동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때 용기를 내어 생애 처음으로 카페를 만들고 주인장이 되었다. 카페명은 [내 마음이 쓸쓸할 때]였다.


때때로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마음이 허했던 나는 스스로 나선 것이었다. 카페 소개는 "일상을 함께 쓰고 나눕니다. 마음이 쓸쓸할 때 방문하세요. 당신을 환영합니다."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한 두 명씩 가입하더니 한 달이 지났을 무렵 50명 가까운 사람이 카페에 모였다. 다들 환영 인사 정도의 짧은 글은 드믄드문 썼다. 하지만 왜 이곳에 가입을 하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잘 알 수 없었다. 대신 주인장의 글은 손꼽아 기다리는 눈치였다.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마다 썼다.  지금처럼 매일 글을 썼던 것도 아니었고, 적어도 2주에 두 편 이상은 썼던 것으로 기억난다. 가끔 좋은 반응도 일었다. 1년 남짓 운영했고, 오프라인 모임을 시도했지만 끝내 이뤄지진 못했다. 그때 인상 깊었던 기억은 내가 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몇몇의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이었다. 이렇게 글로 풀어내다 보니, 그 순간들이 더 명료해진다.


영화 <her>

맞다. 그때가 처음 내 글을 읽는 독자를 마주했던 때였다. 친구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그때 순간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더 선명하게 기록되고 가슴에 남는 기분이다. 그런 귀한 추억을 방치하고 있었다니. 그래도 이렇게 다시 꺼낼 수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내가 쓸 책에서 무엇을 어떻게 담을지는 미정이지만 최소한 명확한 독자층은 '마음이 허한 사람'으로 정했다. 내 앞에 한 사람을 두고 무엇이라도 마음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울림을 전하는 글. 아, 이렇게 쓰고 나니 거창하지만 그래도 좋다. 쓸수록 막연했던 것들이 하나씩 실타래 풀리듯 풀린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것은 절대로 물리학이나 윤리학의 문제가 아니다.
_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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