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짬짬이 시간을 두고 책을 읽는다.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기록해둔 독서 시간과 목록을 살펴봤다. 누적 시간을 합쳐보면 적을 때는 30분이고 많으면 1시간을 살짝 넘는다. 주로 읽는 장르는 퍼센트로 나누면 소설이 60% 정도로 선두였다. 그 외는 산문집과 시집, 자기 계발 관련 서적이었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나는 언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물론, 좋아하는 정도와 읽는 량은 비례하지 않는다. 이십 대 첫 직장에서 월급을 받았던 때부터 습관처럼 서점을 찾고, 헌책방을 아지트로 삼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처음 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읽어봐야지 다짐했던 때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다. 어머니가 사주신 <어린 왕자>가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책 구성이 흥미로웠다. 한쪽은 만화가 그려져 있고, 반대편에는 영어와 한글, 주요 핵심 영단어가 나열되어 있었다.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어린 왕자가 울고 웃으면 따라 행동했다. 중간에 황순원 단편 소설집도 사주셨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소나기>를 읽으며 두근거렸던 기억이 또렷하다. <독 짓는 늙은이>는 어린 마음에 무언가 분노(?)가 차올랐던 것 같다.
또 다른 추억이 있다. 당시 주말이면 여동생과 함께 이모집을 들렸다. 그땐 시집가기 전이라 혼자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모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장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즐비했다. 실제 펼쳐서 읽기보단, 눈으로 책 제목을 하나씩 읽었는데 그게 흥미로웠다. 막연하게 "나도 크면, 이렇게 잔뜩 책을 쌓아두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모는 책만큼 글도 잘 썼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 독서광은 없었다. 다들 스타크래프트와 사랑에 빠졌다. 나도 게임을 전혀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게임보다 편지 쓰는 게 더 재밌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다양한 성격의 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덕분에 글씨체가 좀 예뻐졌다 해야 될까. 자주 쓰다 보니,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주변 친구들은 자주 내게 물었다. "쓸 내용이 없는데, 너는 항상 그렇게 빼곡히 쓰냐."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쓰는데."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실이 그러했으니까. 무엇이 되었든 늘 편지지 한 장을 가득 채웠고, 애정 하는 친구에겐 더 많은 분량으로 애정공세를 퍼부었다(양으로 사랑을 쟁취할 수 없음을 그때 느꼈다). 시집을 펼치게 된 무렵도 그 때문이었다. 마음을 얻어야 되니까, 써먹으려고.
"가끔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대목,
어쩌면 한 구절만이라도 우연히 발견하면
책은 나의 일부가 된다."
책이나 독서와 관련 책자를 몇 번 구입하고 읽었던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끝내 마지막 장을 펼칠 수 없었다. 지루하고 뻔한 내용들이라 여겼다. 어떤 틀에 맞춰 끼워지는 기분 같아서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실천하는 독서는 비효율적이다. 동시에 여러 편을 읽는 게 대다수다. 여러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뒤죽박죽 섞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읽는다. 글을 쓸 때만큼이나 읽을 때면 온전히 내 세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