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흩날리며 돌아올 날 기다린다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를 읽고

by 춘프카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를 읽었다. 책을 구입하여 펼쳤던 시기는 무더웠던 7월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이전에 신영복 선생님이라는 분을 여러 지인을 통해서 귀동냥으로 듣곤 했다. 하지만 그분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선생님의 좋은 작품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첫 저서를 <나무야 나무야>로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당시 나는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 좋은 풍경도 보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책 중에 국내 여러 곳을 다니며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내듯 쓰신 책이라는 말을 듣고 곧장 읽었다.

책 속에 담긴 글은 1995년 11월부터 1996년 8월까지 <중앙일보>의 지면에 실렸다. 당시 단절의 공간(교도소)으로부터 벗어난 지 8년 만에 국토와 역사의 뒤 안에서 띄우는 사색의 글 25편을 모은 책이다.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이라 읽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맑은 문체와 ‘그림도 글 쓰는 사람이 그린다면 글에 못다 담은 것을 보충할 수 있겠다 싶어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직접 그렸다’고 고백하신 그림도 눈의 띄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이름 없는 엽서의 주인공이 마치 나인 것 마냥 설렜다.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기분 좋은 피곤함을 느꼈다. 같은 공간과 장면, 순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표현하고 글로 담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밑줄 친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P24) 어젯밤 별 한 개 쳐다볼 때마다 100원씩 내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소나무 한 그루 만져볼 때마다 돈을 내야겠지요. 사실 서울에서는 그보다 못한 것을 그보다 비싼 값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P29)"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P54. "태양은 오늘도 변함없이 떠오르고 있다." 이것이 오늘 아침에 다시 한번 확인한 지극히 당연한 진리였습니다. '희망'이란 오늘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 다가서는 창(窓)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으며 나는 또 어떠한 환상을 원하고 있는가. 이것이 한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당신과 내가 나누어야 할 새해의 이야기입니다.
P90.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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