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보도 형태 그리고 카프카의 <소송>
머리가 지끈거렸다. 화가 치밀었다. 최근 언론 보도 형태 때문이다. 기사에는 팩트도, 취재 흔적도 없었다. 수백 건에 달하는 기사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자극적인 제목은 제각각이었다. 모르겠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언론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언론단체에 적지 않은 시간을 몸담았던 흔적일까.
실은 지난주부터 계속 이 부분에 대해 쓸까, 말까 고민했다. 이야기가 너무 광범위해지지 않을까. 나조차도 자극적인 기사처럼 일부의 글로 치환되진 않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답답한 심정으로 며칠을 앓았다. 한 사람의 유명인(또는 일반인)이 하루아침에 세상에 둘도 없는 쓰레기라 온 세상에서 떠들어되면, 어떤 기분일까. 현상을 목도하며 나는 계속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첫머리가 생각났다.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방을 세놓은 브루바흐 부인의 가정부는 매일 아침 8시면 그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곤 했는데 이 날따라 오지 않았다.
_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첫머리
처음 <소송>을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 카프카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궁금했다. 김영하 작가는 언젠가 팟캐스트를 통해 이 작품에 대해 말했다. "카프카의 <소송>은 결국 명확한 결론이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왜 주인공 요제프 K가 소송에 휘말려 체포가 되었으며, 결국 죽음까지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결론 없이 끝나는 지점이 더 현대적 문학으로 다가온다."
하루아침에 눈을 떴는데 나는 범죄자가 되어 있다. 아니라고 외쳐도 들어주는 곳(언론사)이 없다. 반대로 범죄자라는 소문은 갈수록 무성해진다. 예를 들어 "춘프카는 깡패였다."라고 한 사람이 외친다. 그럼 정상적인 기자라면 춘프카를 찾아가 물어야 된다. 또한 여러 각도에서 사실과 진실의 경계선을 오가며 취재를 병행한다. 정리된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쓴다. 하지만 요즘은 반대다. 춘프카는 깡패였다는 기사를 그대로 받아쓴다. 한 사람이 시작한 이야기가 여러 사람으로 퍼지다 보면, 진실은 사라지고 전달된 사실만 남는다.
한참 시간이 지나 결국 춘프카는 깡패가 아님이 밝혀졌다. 하지만 큰 의미가 없다. 최초로 외쳤던 그 한 사람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긴다. 일반 대중의 인식은 고착되었고, 다시 바뀌기란 쉽지 않다. 보통 연합뉴스에서 첫 시작을 여는데, 요즘은 유튜버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일명 '폭로 유튜버'라는 명목으로 짧은 영상이나 글을 올린다. 그럼 숱한 언론사들은 면밀한 취재 과정 없이 받아쓴다. 요즘 멀미가 잦은 이유 중 하나다.
갈수록 좋은 질문은 사라진다. 사실과 진실은 모호하다. 김영하 작가가 말한 부분 중 "결론 없이 끝나는 지점."을 언급하고 싶다. 요제프 K는 끝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는다.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읽는 내내 '주인공은 왜 이렇게 멍청하지?'라는 생각을 적지 않게 한다. 하지만 여러 번 읽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저 주인공이 나일 수도 있다.'는 서늘한 느낌. 멀리서 보면 코디미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문필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억울해 합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 합니다.
_이영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