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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Feb 08. 2021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써야 한다!

며칠 전이었다. 오랜만에 서점을 찾았다. 약속한 저녁 일정까지 여유가 생긴 덕이었다. 입구에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놀랐다. 빈 의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가 잔뜩 집중하며 책에 빠져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눈빛. 그 장면을 한참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내 다른 이들처럼 나도 제자리에 서서 시집 몇 편을 읽었다. 그리고 최근 여러 강연을 통해 매력을 느꼈던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책을 집어 들었다.


인문학은 삶의 지도를 그리는 행위다. 적당히, 대충, 할 수가 없다. 운동은 대충 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음악도, 미술도 그렇다. 하지만 인생에 대한 탐구를 대충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대충 사세요,라고 한다면 당신은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왜 그런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는다. 죽음에 대한 탐구 없이 이 생사의 바다를 건나갈 길은 없다. 죽음을 탐구하려면 삶이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대충, 하라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걸음을 가든 궁극의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_본문 1부 4장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이십 대 후반 정확히는 3년 가까이 인문학 특강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직접 강사도 섭외하고 다녔다. 덕분에 여러 인연을 맺었다. 농부시인부터 탄광에서 일하던 서예가, 40년 가가이 헌책과 함께 살아온 아저씨, 이십 대 시절 인도 여행 이후 그곳에 빠져 인도 역사를 연구하게 된 교수 외 다양했다.


다양한 스토리와 결론이었지만, 나는 조용히 옆에서 강연을 들으며 '한 편의 여행기'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스스로 분명한 질문과 함께 방향성을 찾고 나아가는 과정. 더 근사하게 표현할 수 없어 마음이 저렸는데, 고미숙 평론가는 '인문학은 삶의 지도를 그리는 행위다.'라고 명쾌하게 정리해주시어 좋았다.


아, 그때 알았다. 글쓰기는 나처럼 제도권에서 추방당한 이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행해야 할 근원적 실천이라는 것을. 인식을 바꾸고 사유를 전환하는 활동을 매일, 매 순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써야 한다. 쓰기를 향해 방향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된다. 들으면 전하고, 말하면 듣고, 읽으면 쓴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온전히 구비되어야 할 활동들이다. 신체는 그 모든 것을 원한다! 어느 하나에만 머무르면 기혈이 막혀 버린다. 막히면 아프다. 몸도 마음도, 통즉불통('통'하면 아프지 않다 /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 글쓰기가 양생술이 되는 이치다.

_본문 1부 4장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인식을 바꾸고 사유를 전환하는 활동을 매일, 매 순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글쓰기다, 라는 문장이 계속 시선에 맴돌았다. 매일 무엇인가를 쓰고 있지만 때때로 주춤하던 내 가슴을 꼭 찍었다. 그리고 한참을 빠져 읽었다.


더불어 ‘쓰기 위해 읽는다’는 관점도 신선했다. 내가 읽는 이유는 결국 쓰기 위해서다. 그 차이가 삶의 농도와 밀도를 짙게 만든다.


책 제목을 다시 봤다.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이제 거룩함을 넘어 통쾌하게 쓸 차례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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