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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Feb 26. 2021

나는 아내가 계속 성장했으면 좋겠다

가장 좋아하는 책 같은 사람


계속 연락 오는데, 어떡하지?

아내가 물었다. 발신자는 출산 직전까지 다니던 어학원 대표였다. "다들 기다리고 있다. 끝까지 기다릴 테니, 꼭 오세요."라는 취지였다. 그간 이런 부탁이 제법 있었다. 육아휴직 이후 퇴사를 한 지금까지 한결같은 입장이다.


그곳은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업무 하는 분들 대부분 실력도 있고, 외국에서 학창 시절과 대학까지 나오신 분도 여럿 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그런 곳에서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설 연휴가 지나고 호소는 더 강해졌다. "아들 많이 컸죠? 곧 돌이겠네요. 어학원 근방에 학부모님이 직접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있는데, 예약해뒀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더 말하세요. 준비 다 해놓을게요." 아내는 내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때때로 한심하다. 그저 끝에 "아직 아들이 어리니까, 조금 더 커야 되지 않을까?"라고만 조용히 대답한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개운치 않다. 혼자 조용히 소파에 누워 한참을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나는 아내가 계속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공부하고 경험했던 숱한 시간들이 추억으로 남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아'라는 단어 앞에 누추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작 이런 마음만 품고 선뜻 "그래, 한번 해봐."라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밉다.




가장 좋아하는 책 같은 사람

언제였을까. 상냥하고 잘 웃던 아내가 표정이 어두웠던 적이 있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라 계속 묻고 또 물었다. 결국 그날은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 정말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가 부럽기도 하고, 요즘은 종종 밉기도 하다. 마음껏 일하고 글 쓰고, 사람을 만나고. 그게 부럽다가 문득 '아 나도 저렇게 할 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는데. 그때 조금 미워지기 시작했어."


잠깐 멍했다. 신경 쓴다고 했지만,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결혼 전에 잔뜩 호언장담했던 말도 생각났다. "매일 밤마다 우리 산보하자. 다투는 날에도 대화하자."라고. 부끄러워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깊은 대화조차 못 나누고 잠들기 일쑤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더 그랬다. 둘 다 서툴렀고, 분주했다. 처음이고 낯설었다. 새롭게 직면해야 될 것들이 산재했다. 종종 다투는 일도 있었다.


1759일. 아내를 처음 알고 사랑에 빠졌던 기간이다. 늘 내게는 '평생 읽고 싶은 책'같은 사람. 오랜만에 연애시절 썼던 편지를 들춰봤다. 지금 읽어도 제법 닭살이지만,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너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가장 좋아하는 책 같은 사람.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영원한 사람.
흐름 따위는 가볍게 초월하는 사람.

_언젠가 썼던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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