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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pr 16. 2021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게

7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그날을 떠올렸다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금일 오전 08시 30분.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보낸 곳은 '팀 라이트'.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매주 금요일, 글을 통해 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예전에도 여러 뉴스레터를 받아본 적은 있지만 온전히 '글'에 집중하는 편지를 신청하고 받게 된 것은 처음이다. 덕분에 첫 편지를 더 고대하며 읽게 됐다. 서두에서 내게 물었다.


7년 전 그날. 그때. 춘프카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그 질문에 과거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감정과 절망들이 스쳤다.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길 버스 안에 올랐다. 귓가에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흘러나왔고, 하늘은 맑았다. 긴급 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세월호 관련 첫 보도를 읽었다.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얼마 뒤, '전원 구출'이라는 후속 기사가 쏟아졌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거듭되는 오보로 점철된 기사와 무기력한 대응을 일삼는 국가를 보며 괴로웠다. 


무엇보다 스스로 '기자'라는 삶을 동경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열망의 대상이었고, 평생 그런 삶을 살아가야지 수십 번 외쳤던 그 직업이자 꿈이 누추해졌다. 깊은 마음의 상처가 배였다. 답답한 마음을 친한 선배에게 털어놨다. 


"선배, 어떻게 이래요?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괴로운 마음은 잘 알겠지만, 감정에만 치우치면 그들을 오래 기억할 수 없어."

"네?"

"이번 사건을 기억하는 부끄러운 어른으로써, 지금의 갈증이 얼마나 유효할까?"

"..."

"지금 남아 있는 우리가 잘 기억하고 계속 써야 돼. 어려 의미에서."


선배는 '기자'라는 타이틀을 걷어내고, 글 쓰는 삶을 꿈꿨던 네가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감정에만 치우치지 말 것. 긴 호흡으로 그들을 오래 기억할 것.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7년이 지났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까?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선되지 못한 것들도 숱하다. 개인적으로는 미디어, 언론에 대한 부분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기사 제목부터 불편하게 만드는 보도가 쏟아진다. 진실과 사실의 구분선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잦다. 


매년 국가별 언론 신뢰  지표를 공개하는데 대한민국이 꼴찌를 착실하게 유지하는 결과로도 나타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취재하는 언론인도 많다. 노출이 잘 안 될 뿐.


그럼, 나는 어떤가. '부끄럽지 않은 어른'인가. 더 근사한 어른이 되진 못했지만, 서 있는 지금 이곳에서 계속 쓰고 있다. 마음으로 누군가를 읽고, 공감하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때로 감정이입이 너무 깊어져서 탈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2014년 당시 신문사에 기고한 짧은 글로 끝맺는다.


이제 눈물을 멈추겠습니다. 
더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자책과 반성, 순간의 감정만으로는 
그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긴 호흡과 함께, 그들을 가슴 깊이 새겨놓습니다. 
굳게 뜻을 정합니다. 
남은 세상, 제가 서 있는 그곳에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2014년 5월 16일 춘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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