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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pr 22. 2021

역시, 퇴사하길 잘했어

인생의 ​위대한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때는 2013년 6월 초여름이었다. 잘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내 나이는 이제 스물여섯이었다. 평소 구수한 입담을 뽐내시던 사장님은 거듭 주문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다니라고. 이에 맞서 최대한 예의 바르고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퇴사합니다."

퇴사 후, 한 달은 있는 힘껏 놀았다. 잠도 실컷 잤다. 오랜만에 '딴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좋았다. 고요한 일상을 즐겼다. 그렇게 충분히 쉬었더니, 다시 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침대에 누워 빈 연습장을 펼쳤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 해야 될 것을 정리했다. 써놓은 목록을 찬찬히 살폈다. 다시 한번 느꼈다. 역시, 퇴사하길 잘했어.





곧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충분히 글을 쓰고 언론고시를 준비할 수 있는 일터가 필요했다. 이제 막 퇴사한 사람이 다시 입사라니. 다소 웃길 수 있지만 당시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단순 아르바이트는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그 계획을 듣던 친한 벗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회사가 안 바쁜 데가 어딨냐. 공무원처럼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것도 드물고."


우려를 충분히 공감했다. 하지만 뭔가 확신이 있었다. 그런 곳을 찾을 수 있겠다는 느낌적인 느낌. 아니나 다를까, 며칠 되지 않아 한 공고문을 발견했다. '언론단체 간사 모집.' 오전 9시 30분 출근, 오후 6시 퇴근에 주 5일제. 주 업무는 언론 비평, 방송/신문 모니터. 매일 신문 읽고, 글(성명서, 보도자료 외 다수)을 쓰는 일.


읽고 쓰는데 월급을 주다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급여를 살펴봤다. 오호라! 전 직장의 딱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당시 나는 어렸고, 철이 없었다. 주저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물론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 없이 '믿는다.'는 눈빛을 보냈다.


거침없이 입사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다 작성 후 읽어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로봇 메카트로닉스 전공에 자격증은 전기, 캐드 외 다수. 학창 시절부터 글을 쓰긴 했지만, 이력으로 남길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낯선 번호가 울렸다. 지원한 그곳이었다. 면접에 올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면접장소를 찾아갔다. 그제야 현실을 직시했다. 우선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지원한 것에 놀랐다. 딱 한 명 뽑는데, 그날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열한 명이었다. 긴장도 풀 겸 옆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아, 저는 신문방송학과예요. 신문사 인턴 경험도 있고요."


아, 그렇구나.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봤다.


"혹시, 그쪽은?"

" 저도 같은 과고요. 오늘 면접 보시는  중에  분이 저희  교수님이세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무슨 배짱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상상했던  이상의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온 거, 할 말은 다하고 가자.' 그렇게 결심했다. 이내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관 두 명에 나 한 명. 일단 비전공자가 왜 지원했는지 물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벌써 8년 전이니까. 무척 긴장하기도 했고. 다만 내 대답을 듣던 면접과 두 분이 시종일관 웃던 기억이 난다. 다음 질문은 전 직장을 경험하고 남은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무척 진지하게 답했다. "2004년식 아반떼 xd가 남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다. 면접을 잘 봤냐는 주변 이들의 질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설사 안 된다고 해서 기운 빠지거나 그러지 말자고 중얼거렸다. 몇 시간 뒤, 그곳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네..."

"이번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아, 떨어졌구나. 최대한 아쉬운 티 안 내야지. 그렇게 노력한다고 노력했는데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새어 나왔다.


"제가 많이 부족하죠? 저 잘할 수 있는데..."

"네, 많이 부족하시더라고요. 그렇데 결과적으로 합격하셨습니다."

"네?"

"다른 사람보다, 제일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그렇게 살면서 다시없을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배운 것들이 참 많다. 다양한 경험과 기회도 즐비했다. 앞으로 하나씩 그때 기억을 풀어내고자 한다.


인생의 위대한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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