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프카 Apr 25. 2021

세계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말의 끝자락이다. 퇴근 후, 조용한 카페를 찾아다녔다. 스타벅스는 어딜 가도 분주해서, 집중력을 높이는 데 불편함이 많았다. 허름만 동네 골목길은 지나, 한적한 곳을 발견했다. 슬쩍 가게 안을 살펴보고 여기다 싶어 들어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한쪽 구석에 자리 잡았다.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를 켰다. 익숙한 빈 페이지를 마주하는데 오늘따라 막연했다. 뭘 쓰지? 그러다 주변을 둘러봤다. 한쪽 벽에 여러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무던하게 그쪽을 지켜보고 있는데, 순간 '엇'하는 소리와 함께 그리웠던 책을 발견했다.




초등학생 때였다. 어렸을  여동생과 이모집을 종종 방문했다. 놀러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  책장부터 보였다.  읽지는 못했지만 겉표지나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 무언가 흥미로웠다. 다양한 색감이 어린 마음에 인상 깊었던  같다.


간혹 제목에 이끌려 궁금한 마음에 펼쳐봤다가 그대로 덮었던 적도 많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고, 빼곡한 글만 보면 '뭐야, 그림도 하나 없네.' 투덜거리면서 제자리에 두었다. 그날도 동일한 작업(?)을 반복했다. 무엇을 읽어 볼까, 두리번거렸는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했다. 101가지 모두를 읽을 자신은 없었지만, 궁금했다. 마음을 열어준다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조심스레 책을 펼쳤다. 목차를 살펴봤다. 첫 이야기인 '서커스'를 시작으로 '사랑은 떠나지 않아'라는 마지막 제목까지 읽었다. 재미있을까. 머리를 긁적이다 서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는 이렇게 썼다.  뜬금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문장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짐작해본다.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이야기 '서커스'부터 읽는데 살면서 처음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슬펐을까. 영화나 드라마를 본 것도 아닌데, 한참을 울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책(글)을 읽고 감정이 터졌던 순간이. 그때부터 이야기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고 싶다고, 막연히 결심했던 순간이었다.




조용히 책을 다시 펼쳤다. 그때 감정이 유효할까? 그때마저 읽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를 더 집중하게 됐다. '서커스'에서 등장하는 가족을 이제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다시 읽었다. 어느 때보다 분주했던 주말이었는데, 뭔가 치유되는 기분이다. 잊고 있었던 추억과 장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어, 벅차다.



서로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이다.

레베카 폴즈


매거진의 이전글 역시, 퇴사하길 잘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