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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ug 09. 2018

나는 꿈을 품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글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1)

운이 좋았다고 해야 될까? 나는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 취업했다. 교수님도 주변의 친구들도 놀란 반응이었다. 전공수업에는 관심 없고, 학교 도서관 주변을 배회하던 나를 보았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나는 속한 과에 애정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꿈을 품고 있었다. 좋은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게 '기자'라는 직업이라 읽었다. 남몰래 수년간 언론고시를 치렀다. 물론 결과는 형편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용감하게 막 썼던 시절인 것 같다. 빈 페이지를 두고 매일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리고 도저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작가들의 글을 보며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새겼다. 그러다 어느덧 졸업할 시점이 다가왔다. 이제 슬슬 부모님께 그간 혼자 품었던 꿈을 말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늦은 저녁, 부모님께 진지한 표정으로 "할 말 있어요."라고 말한 뒤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어머니가 먼저 선수를 뺏어 한 마디 하셨다. 전공과 관련된 곳으로 취업하라고. 아버지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너 대학 보내줬는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낯설었다. 늘 내가 하는 일들에 있어서 크게 관여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만 보던 분들이었는데, 처음으로 자식에게 요구한 것이다. 나는 하려던 말을 눌러 담았다. 그리고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1) 부모님이 소원대로 전공과 관련된 회사에 입사한다.
2) 입사 후 나름대로의 성실을 인정받는다. 퇴근 후 계속 공부하며 언론고시를 계속 준비한다.
3) 1년 안에 신문사에 합격한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정말 운 좋게, 입사했다. 입사한 지 5개월이 지날 때쯤 진급도 하고 나름대로 성실하다는 평을 받았다. 퇴근 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조건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침 8시 반 출근은 진급과 동시에 한 시간 일찍 당겨졌고, 퇴근하는 시간은 늦춰졌다.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길 원하는 회사 선배들과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는 젊은 막내의 의견은 자주 충돌했다. 그 속에서 악착같이 네 번째 시험을 준비했다. 결과는, 낙방. 오로지 글 실력으로만 평가하는 곳이기에 나는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이대로 계속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언론고시를 치르는 것이 맞을까. 누구 말대로 지금 직장에서 착실하게 일하고 돈도 모으고 차도 사고 집도 사서 나름대로의 만족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을까. 내 꿈은 말 그대로 꿈이었을까.


잠 못 드는 긴 며칠간의 시간들이 흘렀다. 답답하면 나는 아버지를 찾는다. 산책하자고. 함께 걸으며 속내를 털어놨다.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아버지는 한참 내 이야기를 듣고, 한 마디 하셨다. "나는 무조건 네 편이다." 숙이던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번 더 말하셨다. "나는 무조건 네 편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무슨 긴 말이 필요할까. 늦은 새벽까지 생각은 이어졌고, 나는 마음을 정했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 이기적인 판단일 수 있겠지만,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보다 깊이 온전히 언론에 대해, 글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정했다. 부모님께 아침부터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회사에도 내 생각을 말했다. 언제나 정겨운 욕을 자주 내뱉던 사장님은 "네가 무슨 사춘기 학생도 아니고, 신문사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냐. 우리 회사가 비전이 없어 보이냐."라고 말하셨지만, 나는 충분히 생각을 말씀드렸고 다음 후임자가 올 때까지 인수인계를 한 달가량 해드린 뒤 퇴사했다.


길지 않은 첫 취업을 마치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매일 도서관을 출근하며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그때였다. 아주 우연히 한 취업 채용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지역의 언론단체였다. 간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업무는 다음과 같았다. 신문은 읽고, 언론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공부해갈 수 있고, 현직 기자분들과도 접촉이 잦았다. 딱이었다. 문제는 딱 한 명 뽑는다는 것. 일단 용기 내어 이력서를 정성껏 작성해 제출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면접 보러 오세요,라고. 부푼 가슴을 안고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이게 웬일. 의외로(?) 경쟁자들이 제법 있었다. 나를 포함해 열명 남짓 되어 보였다. 슬쩍 전공을 물어보니, 다 언론학과를 졸업한 분들이나 관련 업종으로 경험이 있으신 분. 그 많은 사람 중 유일하게 나만 튀었다. 아무리 이력을 꼼꼼히 봐도 나는 연관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숨을 쉬고 있는데 내 차례를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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