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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ug 14. 2018

'일터'가 '꿈터'였던 곳

누군가에게 글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2)

"잘 다니던 직장은 왜 그만뒀어요?"

면접관의 첫 질문이었다. 잠시 주춤했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했다. "저는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면접관님 앞의 제 이력을 살펴 보면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목표로 부족하지만 공부해왔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대로 익숙해질 것 같아서. 그게 두려웠습니다." 미리 준비해놓은 멘트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답변했다.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고 나는 계속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30분가량의 독대 면접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왔다. 건물을 나서는 데 바람이 시원했다. 내 마음도 같았다. 결과가 어떻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한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은가'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진짜 나는 말 그대로 무관한 사람이었으니까.


몇 시간 뒤,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면접을 본 곳이었다. "열 명 중 제일 열정적이었습니다. 대표님과 상의 후 결정하였고요. 내일부터 바로 출근 가능한가요?" 신기했다. 얼떨떨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다음날부터 언론단체의 간사로 출근을 시작했다. 첫 출근과 함께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업무라기보다 내겐 공부였다. 지역 내 발행되는 여러 신문을 읽고 하나의 사안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검토했다. 그리고 매주마다 '신문 모니터'라는 글머리로 정리하여 홈페이지에 올렸다. 큰 사무실은 아니었지만, 한쪽에는 언론과 관련된 수많은 서적들이 즐비하게 늘어져있었다. 정말 매일이 행복했다. 물론, 과거의 직장에 비해선 월급이 부족하긴 했지만 애당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겐 돈 보다 값진 경험과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고 이곳은 정확하게 부합되는 곳이었다. 단체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여러 기회도 생겼다. 신문지면에 처음으로 내 이름이 또렷하게 적힌 칼럼을 작성했다. 또한, 매주마다 사무실에서 시사 관련 라디오 방소을 진행했다. 일요일 오전이면 내 목소리를 잘 들었다며 가까운 지인들이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은 2년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고 격려해주는(?) 선생님도 생겼다. 다른 무엇보다 진지하게 내 길을 읽고 많은 첨삭보다는 말 그대로 진지하게 읽어주시고 적당한 조언 정도만 해주셨다. 덕분에 나도 더 진지해질 수 있었다.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쓰는 시간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 글을 통해 무엇인가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기분. 그것은 단순히 직업으로써의 기자라는 꿈을 넘어서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글로써 누군가에게, 또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지션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래서일까. 내 꿈은 보다 깊어졌고, 확대됐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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