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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May 18. 2021

“저에게 부캐란 ‘도전’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밤낮없이 타인을 구조하는 남자

서른두 살 박지훈 씨는 응급 구조사다. 그는 근무처를 ‘매일 익숙하고도 낯선 환경’이라 표현했다. 위급한 환자들을 바삐 살피는, 분주함의 연속이었다. ‘제때 끼니를 챙겨 먹는 것도 사치’라고도 말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생사를 오가는 이들을 마주하며 ‘죽음’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연차가 늘어날수록 월급도 함께 올랐지만, 뭔가 개운치 않았다. 알 수 없는 허무와 무료함도 함께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업을 유지하며 다른 삶에 변화를 꾀했다. 얼마 뒤 1인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목소리가 좋다.’라는 칭찬과 함께 스스로 느꼈던 고민과 생각을 풀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매일 밤이면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 삼아 두런두런 속삭였다. 


‘한 사람이라도 방송을 접한다면 다행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매일 밤이면 방송을 켰고, 한 달이 조금 지나서는 제 이야기를 찾아 듣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의 방송을 듣던 이들은 자신도 비슷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함께 마음을 나눴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은 올해로 3년 차. 낮에는 생명을, 밤이면 타인의 마음을 구조하는 남자로 거듭났다. 같은 사람이지만, 조금은 다른 정체성을 띠며 그는 살아가고 있다. ‘본캐’와 ‘부캐’의 적당한 간극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부캐의 시대다

부캐. 애초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다. 본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 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요즘은 ‘평소 내가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활동할 때’를 뜻한다. 


부캐는 지난해 대중문화 트랜드를 요약하는 키워드이기도 했다. 래퍼 매드클라운이 눈코입만 드러내는 비니를 쓰고 스스로 ‘마미손’이라 우겼다. 코미디언 유재석은 트로트 가수 ‘유산슬’과 남녀 혼성그룹 싹쓰리의 ‘유두래곤’으로 활동하며 부캐를 각인시켰다. 


최근 흥미로운 조사도 발견했다.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은 직장인 1,202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부캐’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응답한 이들의 73.5%가 부캐를 갖고 싶다고 답했다. 그중에서 이미 본업과 병행하고 있다며,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답하는 이도 있었다.



좌측은 사람인에서 조사한 여론조사 디테일한 데이터 / 우측은 현재 내가 진행하고 있는 사이트 프로젝트이자 부캐

     

작고, 가볍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지난해 12월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을 출간한 최재원 씨는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데, 생각만 하고 있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나만의 부캐를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한다. “하나의 모습으로만 살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조금 아까우니까요. 한 번도 꺼내지 못했지만 내 안에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사이드 프로젝트의 형태로 움직여보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나의 두 번째 캐릭터가 서서히 잡힐 거예요.” 


다양한 정체성은 마음의 회복력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 사람이지만 자기 개념을 여러 개로 가지고 있는 경우, 심리학에선 ‘자기 복합성’이라 칭한다. 가시나무 가사 속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와 같은 맥락이다. 작가이자 심리상담가, 유튜버로도 활약하는 손정연 씨는 말했다. “부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사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이 많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다양한 자기개념, 자기 복합성이 꼭 필요하다.”


밤낮없이 타인의 마음을 건드리는 박지훈 씨에게 자신에게 부캐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힘찬 어조로 답했다. “저에게 부캐란 ‘도전’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에게 부캐란 무엇인가요?

어떤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요?






[참고 자료]

-시사IN ‘사이드 프로젝트’ 관련

[‘부캐’를 키웠더니 살 만해졌습니다]

-책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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