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인생

잠 못 드는 밤, 아버지 그리고 열정에 대해서

by 춘프카
인생은 짧은 이야기와 같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아니라, 가치다.

_세네카

잠 못 드는 밤, 쓰다


어렸을 적 이야기다. 정확히는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무렵이었다. 여동생과 2층 침대를 나눠 썼는데 내 위치는 위쪽이었다. 당시 나는 잠들기 전, 반복하는 한 가지 버릇이 있었다. 필통에서 자와 연필을 꺼내어 베개 밑에 두는 것이었다. 꿈에서도 공부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였다,라고 말하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집안에 남자는 달랑 나 하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워킹맘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동생은 언제부턴가 '아빠'라는 단어가 그리웠던지 주변에 어른 남자만 보면 쫓아다녔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 말하면 좀 거창하고, 그저 집안 분위기를 스스로 느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혹여나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 침입한다면 대응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제법 긴 시간을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담임이자 내게 자주 손편지를 써주셨던 선생님과 둘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 얘기를 꺼냈다. 막상 털어놓고 나니,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좋아하는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다니, 앞으로 이상한 아이처럼 비치는 건 아닐까 하고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선생님은 잠깐의 침묵을 유지하셨다가 인자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내 내가 예상했던 답변과는 전혀 다른 결로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남자네."


질문도 하셨다. 그런 행동을 통해 마음속에 찾아드는 두려움은 좀 가셨는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되려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 연필과 함께 공책도 넣어봐. 일기 쓰듯이, 네가 느껴지는 여러 감정을 써보면 어떨까. 한결 나을 거야."라고 말하셨다. 덧붙어 절대 숙제가 아니니까, 쓰고 싶지 않은 날은 안 써도 된다고 주문하셨다.


그날부터 빈 연습장이 베개 밑에 추가됐다. 가끔 잠이 안 들 때는 그날에 기억나는 장면이나, 여러 생각들을 두서없이 끄적였다. 선생님 말씀처럼 뭔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쓴다는 것이 제법 근사한 행위라는 사실을.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낯선 장면에 익숙해지는 태도, 여행


일반적인 가족과 모양새가 다른 것에 대해 어머니께 불안을 표했던 적은 없지만 알 수 없는 허기는 늘 찾아왔다. 얼마 뒤, 지금의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 가족에겐 선물 같은 존재였다. 여름이면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이전에는 느껴볼 수 없는 자유로움과 근사한 떨림이었다. 구형 프라이드 차 곳곳에는 며칠간 먹을 음식과 텐트 외 다양한 장비가 즐비하게 쌓여 있었다. 뒷자리에서 나와 여동생 발 밑에는 짐이 잔뜩 있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형편이 되든, 되지 않든 무조건 떠났다. 아버지 덕분에 기존에 알고 있던 남자 어른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다. 믿을 수 없고, 믿기 조차 싫은 불편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닮고 싶은 어른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글쓰기와 함께 여행이란 단어는 내 학창 시절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 어디를 갈 것인지 구상하고 밑줄을 긋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었지만, 그렇게 짠 계획을 토대로 전국 곳곳을 잘 찾아다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좋았다. 좋아하면 닮는다고 그랬던가. 나도 곧잘 길을 잘 찾아다니고, 분주한 일상이지만 늘 여행을 꿈꾼다. 작년에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매년 어디로 여행을 떠날 건지 계획을 짜는 풋내기 아빠지만 그래도 좋다.


나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가슴이 뛸 때까지, 열정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글쓰기와 여행은 몸과 마음으로 부딪치며 배워갔다. 소문난 책벌레는 아니었지만, 가슴에 닿는 책은 아껴가며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대사를 달달 외울 때까지 몇 번이고 보고 또 봤다. 누군가 "왜 같은 책,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살펴보세요?"라고 물었다. 잘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그 알고 있는 대로 행동을 취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니까,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을 잘 취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여러 번 본다고 답했다.


사는 날보다 살아가야 될 날이 더 많지만,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내린 철학이라고나 할까. 몇 가지 규정들이 있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다. 결과는 나중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실패를 통해 얻는 것이 더 많았다. 예전에는 그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자주 규정했지만 살아가면서 의미가 더 보태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그 실패를 통해 분명한 교훈과 성장의 밑거름을 만들어가야 된다,라고.


한 구독자가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을 읽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왜 이십 대부턴 책 대신 사람을 자주 읽으셨냐?"라고 댓글을 남겼는데 그것에 대한 답을 해야겠다. 책을 멀리한 것은 아니지만,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분명 무언가 배우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었다. 연령과 직급을 나누지도 않았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귀를 기울였다. 그런 태도는 말하는 사람을 더욱 수다쟁이로 만드는 악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내 인생이 노잼처럼 느껴질 때면 '열정'과 '도전'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신발끈을 묶고 힘차게 달렸다. 낯선 시작을 미루지 않았던 나는 타인에게 '금수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종종 말하는데, 듣는 이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집안에 재산이 많냐고 물어본다. 서열 사회에서 통용되는 금수저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결국 '무엇이라도 도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마음껏 행동하는 삶'을 일컫는 게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나는 금수저의 삶을 과거도 현재도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예전처럼 더 이상 꿈을 좇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부딪쳐간다. 김미경 강사님은 세바시 강연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꿈은 가슴이 뛸 때까지 일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가슴 뛰는 꿈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며 어떤 일이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꿈을 이루는 길이다.

김미경, <드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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