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도 계속하는 게 용기야."

방랑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편지

by 춘프카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오호라. 요즘 열심히 썼더니, 브런치에서 또 제안이 오는구나. 브런치 작가님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이곳에서 오는 제안은 늘 가슴 뛰는 선물 같다. 두근 되는 마음을 추스르고 조심스레 메일을 클릭했다.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론, 무척 반가운 내용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처음 혼자 김칫국을 마셔가며 상상했던 출간 제안 등은 아니었지만 훨씬 더 귀한 메일이었다.


메일을 보낸 이는 몇 년 전,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대화를 주고받은 '나의 구독자'였다. 이십 대 중반에 접어선 그는 글쓰기에 제법 진심인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에 자주 직면하곤 했지만, 내가 본 그는 명랑했다.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리가 불편하다. 그게 전부다. 그것 말고는 어느 누구보다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전동휠체어 속도를 찬찬히 맞추며 함께 걷던 순천대학교 밤 풍경은 참, 좋았다. 당시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내게 물었던 고민은 글쓰기와 진로에 대한 부분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다른 게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잦은 실수와 위태로운 나날들 속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있는 힘껏 고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묵묵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대화 나누고 끄트머리에 말했다. "언젠가 00 씨의 글을 읽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세상에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용기 내어 전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는 수줍게 웃었다.


그날의 만남 이후 지금까지 다른 연락은 없었다. 종종 안부가 궁금하긴 했지만, 우연히라도 내 글을 계속 읽고 있을 그를 상상하며, 마음으로만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메일로 고민을 전한 것이었다.


먼저 그동안 왜 글을 발행하지 못했는지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살리면 '찌질함' 때문이었다고. 뭔가 미련이 남아서 마지막 버튼을 못 눌렀다고 말했다. 그 부분에서 혼자 읽다가 피식 웃었다. '나도 매일 그러는데...'


이번 고민은 그저 글쓰기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내가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까?'라는 지점이었다. 부모님은 학창 시절부터 자주 그에게 '공무원'이란 직업을 추천했고, 그는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번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덜컥 필기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8월이면 면접도 볼 예정이라고 한다.


고민 상담 메일에서 가장 마음이 저릿했던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전, 그저 겁 많은 이십 대일뿐이죠.'


이제 남은 일은 내가 전해줄 답변뿐이다. 제법 고민했다. 무슨 말을 해줄까. 감히 나이 더 먹은 어른이랍시고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눈앞에 있었다면 맛있는 밥을 사주면서 그저 열심히 들어주고 안아줬을 텐데. 코로나19라는 녀석 덕분에 당장 그럴 수도 없고. 답답했다.


우선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나도 여전히 불안하고 겁 많은 삼십 대를 관통하고 있다.'라는 사실이다.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에 들어서면 조금은 위태로운 마음이나 무료한 고민들로부터 벗어날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 가셔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또 다른 새로운 고민이 등장했다. 그럴 때마다 겁도 나고, 다 놓고 싶은 순간도 제법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용기라고."
"용기... 그거 아닙니까?"
"아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계속하는 게 용기야."

_드라마 '굿 닥터' 중에서


두려움은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면서 무언가를 해낼 수는 있다. 두려워도 계속하는 것이 용기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불편하고 가난한 모습을 직면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그 어떤 이에게 조언을 구해봐도 다른 방도가 없었다. 결국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잔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맷집을 길러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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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시절 끄적였던 일기장, 그리고 그때 언젠가 카페에서 찍은 사진.


진로는 본인이 결국 선택하는 것이지만, 나라면 일단 공무원 시험을 끝까지 치러낼 것이다. 합격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다음 문제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 내 꿈을 접고, 부모님의 기대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라면 이왕 합격까지 갈 것이다. 왜? 본인 마음만 분명하다면 직종에 상관없이 계속 글을 쓸 수 있고, 꿈도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우린, 글을 쓰고 있다.

내 서사는 내가 만든다.

인생이란 책의 목차라면, 절반도 오지 않았다.

아직 충분히 남은 이야기와 반전이 있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그렇기에 우린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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