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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05. 2018

그들의 삶을 조용히 마주했다

달님의 <나의 두 사람>을 읽고

7월의 끝자락이었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잘 펼쳐지지 않았다. 쓰고 싶은데 무얼 써야 될지 몰랐다. 그런 시기였다. 그즈음에 우연히 발견한 책이 <나의 두 사람>이다. 책을 쓴 작가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분이었다. 비슷한 시기를 겪여 온 덕분일까. 읽으면서 나도 저런 생각 한 적 있었는데, 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읽은 시간은 두 시간이 채 안 되었지만, 마음으로 느낀 여운은 오래도록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가슴속에 무언가 끊어 오르기 시작했다. 참, 오랜만에,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무언가라도 쓰고 싶어 졌다. 한 사람의 작가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읽는다는 것에 감사했다. 좋은 글을 만난 덕분이다.    


<나의 두 사람>은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다. 조손 가정.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아이. 그 아이가 어떻게 사랑을 받고, 때로 결핍을 느꼈고, 성인이 되어 자신의 꿈을 그려가는 과정들을 담아놓은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체험의 힘은 강하다. 울림 역시 크다. 이렇게만 소개하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다 슬프고 우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안 슬프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참 바른 사람이구나, 따뜻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시인 박준은 이 책을 읽고 “빚이 빛으로 변하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우리에게도 있는 소중한 두 사람의 얼굴이 성큼 다가온다.”라고 썼다. 역시. 괜히 시인이 아니다.    


내용이 조금 길 수 있지만, 프롤로그에서 모든 부분을 담아놓았기에 작성해본다.     




<나의 두 사람> 프롤로그

나는 내 부모가 예감하지 못한 시기에 갑작스레 세상에 오게 됐다. 너무 이르게 온 나머지 그들은 누구의 부모보다 누구의 자신인 게 더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겁먹은 그들은 부모에게 갓 태어난 아이를 맡겼다. 아마 그들에게는 부모가 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사연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태어난 나는 1939년생 김홍무씨와 1940년생 송희섭 씨의 품에서 자라게 되었다.    

또래의 아이들과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일은 자주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가령 초등학교 숙제로 가족신문을 만들어야 했을 때,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한 아이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들 엄마, 엄마하며 따라 울었을 때, 졸업식이든 운동회든 어디서든 내 부모가 가장 늙어 보였을 때, 친구 녀석이 우리 엄마가 이혼 가정 애들이랑은 어울리지 말래, 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 앞에서 했을 때.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숨죽여 주변 눈치를 살폈다. 너무 당연한 룰에서 나만 벗어난 것 같은 초조함. 슬프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그런 것은 점차 괜찮아졌다. 크기와 깊이가 다를 뿐, 가정의 불행한 사연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불행과 비교해 위안을 받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화목한 가정이란 누구나 기대하는 실체 없는 이미지에 가까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행복과 불행을 고루 느껴 본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 있었다.    

내가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내 늙은 부모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50의 나이에 다시 시작된 부모의 삶. 두 시간마다 깨는 갓난 아이를 제 품에서 키우는 수고로움. 한 아이를 먹고 입히기 위해 되풀이된 돈벌이의 고됨.

할머니는 고등어 반토막을 구워 자신의 밥 위엔 껍질을, 내 밥 위엔 살코기 전부를 올려 주었고 자신의 차림보다 내 옷의 다림질에 더욱 정성을 다했다. 60대 중반이 될 때까지 공사장을 다녔던 할아버지는 좋은 날엔 삼겹살, 졸업식엔 새 신발을 잊지 않고 챙겨 주고 싶어했다. 내가 끝내 불행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아끼지 않고 주었던 사랑 덕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 자식은 그 사랑을 당연하다 여겼다. 사랑한다는 말은 저 멀리 미뤄 놓은 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고 바쁘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자주 모른 척했다. 때론 도망치고 싶었고 잊고 싶을때도 있었다. 그래서 종내에는 자주 후회했다.    

가끔 궁금했다. 기껏 키운 자식들이 부모의 바람을 꺾고 품을 떠나는 일을 몇 차례 겪었으면서도 또다시 나를 거두어 키우는 일이 그들에겐 과연 기쁨이었을까. 남은 삶마저 비슷하게 소진될까 봐 혹시 망설여지지 않았을까. 후회되지 않았을까. 어떻게 최선을 다해 나를 키우고 사랑한다 말해 줄 수 있었을까.    

만약 평범한 내게 조금이라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내 늙은 부모와 함께 보냈던 시간 덕분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여 준 적 있다면, 그 또한 내 늙은 부모가 주었던 사랑을 사랑인 줄 알고 자란 시간 덕분이다. 부족한 자식이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들과 함께 보낸 순간들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준 사랑에 작은 대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보낸 시간을 쓴다.

나의 그랜드마더, 그랜드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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