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아유무의 <어드밴처 라이프>
번민하던 이십대 시절. 여러 사람을 만나고 대화했다. 때론 직접 대면하진 못했지만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크게 동했던 기억도 난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십대를 기준으로 정서에 큰 영향을 끼쳤던(물론 선생님은 항상 0순의)작가를 떠올려보면, 가장 선명하게 새겨지는 남자가 있다. 일본 작가 다카하시 아유무다.
그의 책은 언제나 유쾌하고 가슴을 뛰게 했다. <인생의 지도> <love&free> <어드밴처 라이프>등이 대표적인데,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새로웠다. 최근에 어머니를 통해 그 책들을 다시 받아 읽어봤는데, 여전히 좋았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형과 다시 조우하는 기분이었다.
이십대 때 밑줄 그었던 것을 포함하여 새롭게 다시 보여 지는 문장들도 힘차게 그었다. 새삼, 나도 누군가에게 언제나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 밑줄 긋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속삭였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걸로 금세 밥을 먹고살 수 있을까, 돈벌이가 될까,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언제나 처음에는 ‘좋으니까 한다. 이상 끝!’일 뿐이야.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마음껏 몰두하면서 그걸로 먹고살 수 있게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든 뭐든 해서 그저 밥만 굶지 않으면 되거든. ‘당장 돈벌이가 되는 일’의 범위에서만 일을 선택했다가는 범위가 너무 좁아져.
-스무 살 때쯤부터 ‘너희는 말만 번드르르한 녀석들이야’라는 주위 어른들의 말씀을 자주 듣게 되지, 근데 그거 당연한 거 아닐까? 처음에는 말만 번드르르할 수밖에 없거든. 결과나 실적은 나중에 따라오는 거야. 우선은 근거도 없는 자신감으로 마구 내달리는 수밖에 없다니까.
-나는 전혀 쫄지 않은 척하는 게 특기야(웃음). 어떤 일이든 나름대로 쫄지 않는 놈이 어디 있겠어? 요컨대 쫄더라도 하느냐, 쫄아서 관둬버리느냐, 그 차이가 있을 뿐이야.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야. 내 어떤 부분을 키워 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나는 변하게 되겠지? ‘나를, 그리고 내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 그런 시점이 좋더라.
이렇게 낯선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인생을 교환하는 게 너무 즐거워.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을 때 찾아가는 거야. 나는 20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왔어. 돈 같은 거 없어도 죽지 않아.
- 오스트레일리아의 바이론베이, 그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가는 히피, 데이비드의 말.
이 땅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네.
-인도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씼던 노인의 말. 그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과 헤어져 ‘내 몸이 재가 되어 갠지스 강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강가의 작은 움막에서 구걸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녀를 위해 노래하고 그녀를 위해 살고 있어. 그 행복과 슬픔을 담아 노래하는 거야.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돈을 바라는 것도 아냐. 어쩌면 기타를 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다만 ‘그녀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 하나로 이렇게 노력하고 있을 뿐이야.
-.발리 섬 우부두의 길거리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인도네시아 젊은이의 말. ‘그녀가 나의 모든 것’이라는 그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 외에는 그녀를 위해 날마다 노래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사랑과 평화지.
-어떤 나라에 도착하면 곧장 쓰레기처리장으로 가서 잡동사니를 수집하고, 그 잡동사니를 불로 지지고 이어붙이고 조합해서 만든 작품을 길거리에 팔고, 작품이 팔려서 돈이 마련되면 다시 다음 나라로 간다. 게다가 작품의 매상 일부는 소액이나마 그 나라의 혜택 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기부한다. 몇 년 째 그런 식으로 여행하면서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가진 미국인 ‘잡동사니 아티스트’(?!)의 말. “작품에 어떤 마음을 담아요?”라는 내 질문에 대한 한 마디였다.
내가 청소하면 다들 상쾌하다고 하잖아? 남들은 어떻게 얘기할지 모르지만 나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해.
-런던 지하철의 어두운 화장실에서 명랑하고 씩씩하게 일하던 금발 미인의 말. 그녀의 젊음과 미모, 그리고 화장실 청소라는 게 너무도 미스매치한 감이 들어서 “이 일, 힘들지 않아요?”라고 섣부른 질문을 던진 내게 해준 대답이었다.
나는 20년 동안 전 세계를 항해하고 다녔어. 되풀이되는 일상이 싫었거든.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찾은 날부터 나는 변했어.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이 지브롤터 해협을 하루 두 번씩 오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 하지만 신께 맹세코 말하겠는데, 지금이 가장 행복해. 나의 모험은 그녀라는 보물을 발견하면서 끝났어.
-스페인 남단에서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로 건너갈 때, 지브롤터 해협을 왕복하는 배의 갑판에서 만난 선원의 말.
우리는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는 게 아니야.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기 위해 음악이 필요할 뿐이지.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노마드(사막의 유목민들) 젊은이의 말.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멋진 타악기 연주를 해준 그들. ‘굉장한데요! 이렇게까지 훌륭한 연주라면 데뷔해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라는 나의 안이한 말에 대한 한 마디.
이래저래 많지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을 지키는 거. 그것뿐이야.
-야마가타 현 고메자와 시에서 농사일을 하는 아저씨의 말.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가장 진하게 실감할 수 있어서, 그게 행복해서 이 시설에 와 있는 거야.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 여기서 일하는거라고. 착한 척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할 만큼 이게 편한 일은 아니야.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실은 내가 기쁘기 위해 여기서 일하는 거야.
-어느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는 친구 K의 말. 그는 고함을 질러가며 오늘도 분명 그 시설 안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되니까 우리 애들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랄 게 없어.
-요코하마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