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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05. 2018

당신께 전합니다

이병률 시인의 <찬란>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둘 수도 있음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사람이 
사랑의 이사를 떠나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그가 없는 빈집 앞을 서성거려보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번 안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 하지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이병률 시인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당신께 <찬란>이란 시집을 전했다. 그렇게 시집을 전하고 싶다, 는 핑계로 우린 처음 만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덕분에 나는 오랜 시간 그려오던 사람을 숨죽이고, 가까이서,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났고, 다시 책을 돌려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을 펼쳤다. 무엇인가 다가오는 여운이 달랐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던 시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모든 것이 오독되는 순간이었다. 바보 같았지만 이대로가 좋았다. 계속 그러고 싶었다. 지금의 기분이 결코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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