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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05. 2018

 글을 쓰는 원동력은 '사람'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예전 '업글'이라는 글쓰기 모임을 다녔다. 첫 수업 시간의 주제는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였다. 수강생은 해당 주제에 맞는 원고지 10매 분량의 글을 작성해오는 것이 미션이었다. 다음 소개할 글은 당시 작성했던 나의 글이다.

그녀는 예뻤다. 마음은 더 예뻤다. 몸이 불편한 친구에게 어깨를 빌려주기도 하고, 숙제도 도와줬다. 웃음도 많았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회초리를 맞고 눈물을 글썽거리던 순간에도 그녀의 눈가에는 웃음 자국이 묻어났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인생이라곤 8년밖에 살아보지 않은 내가 정확한 답을 찾는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평소 고민을 자주 들어주던 이모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장황한 설명에도 묵묵히 들어주던 이모가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게 내 인생의 첫 ‘글쓰기’ 도전(?)이었다.


 이모는 단순한 조언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가득 꽂혀 있는 책 중에 비교적 얇아 보이는 한 권을 건넸다. “김춘수 시인 시집이다.” 내 인생의 첫 시집이었다. 멀뚱히 시집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내게 “그중에서도 ‘꽃’이란 시를 추천한다. 읽고 써먹어 봐.”라고 귀띔도 해주었다. 그날 밤 ‘꽃’이란 시를 읽으며 편지를 꾹꾹 써 내려갔다. '꽃'의 몇 구절을 인용하며 '네가 나의 꽃이고, 의미다. 좋아한다'라고 적었다. 결과는 대만족. 편지를 건네자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던 그녀. 잠시 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고마워.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 그렇게 내 인생의 첫 글쓰기는 훈훈하게 시작되었다.

 ‘사랑 표현’으로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시간이 지나 세상을 향한 ‘반항심’으로 변해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반 친구 한 명이 학교를 연속으로 결석하기 시작했다. 평소 말이 없고 주변 학우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얘였다.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은 단숨에 ‘꼴통’ 혹은 ‘문제아’로 치부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못 나오게 되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나는 궁금했고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려 그 녀석의 주소를 찾아 집까지 가게 되었다.


 집 문을 열었는데, 몸이 불편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게 인사했다. “00가 학교를 안 나와서 걱정돼서요, 무슨 일 있나요?” 사연을 들어보니 딱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일하시다 다쳐서 제대로 걷지 못한다고 했다. 밑에 여동생 둘도 있는데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둘째와 6살짜리 막내가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한다!”라는 말만 남기고 집에 안 들어온 지 일주일째라 했다. 주변 친구들을 불러 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이틀 밤이 돼서야 공사판에서 일하는 친구를 발견했다. 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었는데, 그 녀석의 꼴을 보니까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선생님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며칠 뒤에 그 친구를 자퇴시킨다는 소문이 돌았다. 화가 나서 교무실을 찾아갔다. 잔뜩 흥분한 상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까 남자 선생님 한 분이 내게 뺨을 때렸다. “네가 뭔데 나서고 지랄이냐. 그놈 식구라도 되나.”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 고심 끝에 교육청 홈페이지를 찾았다. 실명으로 직접 썼다. 글 제목은 ‘친구를 지키고 싶습니다.’ 친구의 사연과 학교의 문제를 낱낱이 고발했다. 반응은 ‘대박’이었다. 다음 날 교육청 관계자 몇몇이 학교로 찾아온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친구는 곧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송00의 글쓰기는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롭다. 학창 시절 일기장을 펼쳐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다만, 굉장히 ‘솔직’하게 썼다. 그 순간의 내 감정에 충실했다. 거짓 없이 썼던 글이 내게 생애 ‘첫 여자 친구’를 안겨주었으며, 친구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내 관심은 여전히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글쓰기 강좌 첫 주제인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런데 두서없이 써 내려가다 보니 조심스레 답이 나온다. 내게 글쓰기란 ‘사람을 향한 관심’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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