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세상의 길목에서 나와 마주하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그건 바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
2006년 봄이었다. 벚꽃이 흩날렸고 난 스무 살이었다. 전공 서적은 지루했고 일상은 무료했다. 강의실을 조용히 나와 도서관을 찾았다. 빈 구석에 앉아 손에 잡히는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등록금이 아까워서라도 이 공간에 있는 책 절반은 읽겠다는 치기를 부렸다. 그래도 허풍 덕에 새로 접한 이야기가 많다. 다카하시 아유무는 그중에서도 내게 탁월한 작가였다.
그는 삶 자체가 여행이었고, 여행 자체가 삶이었다. 스무 살에 대학을 중퇴하고 빚을 내어 친구와 아메리칸 바를 개점했고 2년간 4개 지점이나 늘어날 정도로 사업은 성공했다. 심지어 스물세 살에 자서전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는데, 원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전전했으나 어떤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직접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렇게 첫 책 <날마다 모험>은 세상에 나왔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혼자 물었다. '같은 스무 살인데 이 사람과 나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즉각 행동하는 그와 닮고 싶었다. 앞으로 살아갈 이십 대의 시작을 어떠한 결로 새겨가야 될지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문장 곳곳에 자유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998년 11월부터 2000년 7월까지 1년 8개월의 시간.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떠난 아내와의 여행. 세계를 내 집 삼아 골목골목을 걸었다. 나는 3년간 온 힘을 쏟았던 회사를 넘긴 상태였고 아내 사야카는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어서 지금이 우리가 떠나야 할 적기였다.
어떤 계획도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한다는 것 외에 어디로 갈지, 얼마나 걸릴지 정하지 않았다. '마음 내키는 대로 가다가 돈 떨어지면 돌아오자.'
미지의 길 위해서, 카페에서, 해변에서, 싸구려 호텔방에서 내가 좋아하는 콜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 가며 마음속 우물을 파내려 가듯 시를 노래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순간 호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작은 디카로 셀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끝마친 뒤 당시 노래했던 시와 사진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책으로 엮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시아, 유라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북미, 일본까지 세계의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준 <LOVE&FREE>의 조각을 이제 여러분에게 전한다.
다카하시 아유무 _ 책 <LOVE&FREE>
이후로도 그가 쓴 많은 책을 섭렵했다. <인생의 지도>는 그가 여행을 통해, 그리고 평소 어떤 인생관을 구축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장을 잔뜩 소개한 책이다. 실은 연애 초기 시절, 아내에게 준 두 번째 선물이기도 했다(첫 번째 선물은 이병률 시인의 '찬란'을 전했다). <어드밴처 라이프>나 <패밀리 집시>도 좋다.
나는 결혼하기 전,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 둘 다 퇴사하고 결혼하자마자 세계여행이나 떠날까?" 혼쭐이 날 각오로 농담과 진담을 골고루 담아 전했다. 아내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었고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단정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로 스무 살 때부터 읽었던 책과 작가를 소개하며 그런 삶을 꿈꿨다고 말했다. 조용히 듣더니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럼 우리 가자. 난 괜찮아."
아내는 어쩌면 나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인 듯하다. 둘 다 더 나갔으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장소는 전라도 광주가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이었을 거다. 이후 여러 상황들로 계획을 미루게 되었지만,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마음을 읽어줘서 고마웠다.
너의 떨림을 믿어라.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에 거짓은 없다
이미 숱하게 읽었지만, 매번 다른 영감을 주는 사람이자 이야기다.
나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쉽게 읽히는 글, 삶과 사람을 잘 담아내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