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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

by 춘프카
1182_1882_4643.jpg 사진=pixabay


[brunch]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알람과 함께 시선을 끄는 메일 한 통. 벌써 몇 차례 받았지만 설렘은 여전하다. 분주한 일상에서 선물처럼 다가온 편지를 조심스레 클릭했다. 강연이나 원고 투고일까? 혼자 들떠 있었다. 막상 메일을 열어보니, 그런 제안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제안을 표방한 구독자의 편지였다. 며칠 전 발행한 <짧은 근황>이라는 글을 읽고 쓴 답장이었다.


그와 나는 인연이 깊다. 독자로 만나 실제로 여러 번 대면하기도 했다. 순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기 전부터 알고 지냈으니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어렸을 적부터 몸이 불편했고 휠체어가 익숙한 그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품었다. 학창 시절부터 곧잘 소설을 썼다.


대학 생활은 때때로 무료했다. 시간이 흘러 취업을 목전에 앞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바램은 안정된 직장이었다. 마지못해 시험을 응시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덜컥, 합격한 것이다.


최종 면접 이후 몇 달 뒤 정식 출근을 앞두고 내게 소식을 전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당시 나는 최선을 다해 답해드렸다.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그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서로 사는 게 바빴으니까. 한참이 지나 이렇게 편지가 온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OOO입니다.

바쁜 나날을 보내셨다는 '짧은 근황'을 읽고 저도 근황을 전하고자 글을 씁니다. 가장 큰 일은 머지않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달 중으로 공무원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빠르면 이번 주가 끝나기 전에 사표 처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전 이야기를 하자면 꽤 긴 글이 나올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동시에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고민했을까, 하고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저렸다. 그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글을 쓸 줄 알았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사회복지 부서에서 진행하는 낯선 업무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툴러도 계속 배워가면 되니까. 물론 대뜸 욕을 퍼붓는 이부터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사람까지 난처한 상황을 겪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그의 표현대로 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책임과 부담감이라 고백했다. 사회적 약자 지원 업무를 진행하던 중에 작은 실수가 있었고 윗선에서 수습하여 일단락되었지만 절실히 지원을 바라는 분들이 서비스를 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마주했다. 또, 부모님 뻘되는 기관제 선생님들을 관리하는 업무도 고역이었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나날이 커졌고 두통에 시달렸다. 약을 먹으며 업무에 임했지만 괴로웠다. 이내 스스로 물었다. '내가 이러고 살아야 되나? 글은 언제 쓰지?'



(중략) 아직 젊은 이십 대 중반, 하고픈 일에 올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뭔가 제 예감에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을 해보지 않으면 후회하며 살 것 같았어요.


"그땐 젊었는데..."


하고 말이죠. 당연히 주변에선 다 말렸습니다. 미쳤냐고 했죠. 하지만


"후회하기 싫어서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늦어도 다음 달부터는 웹소설 작가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엔 작가로서의 고민을 들고 오겠습니다.


From. 퇴직을 앞두고 일을 미리 다 해버려서 그저 사표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공무원이



편지를 마저 읽고 한동안 멍했다. 나 또한, 최근까지도 그런 고민이 있었으니까. 몰아치는 업무와 부담감으로 때때로 무너졌던 순간이 다반사였으니까.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지만 그저 아쉬운 바가 있다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지점이었다. 꼰대처럼 잔소리를 퍼붓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깊이 고민을 듣고 좀 나눴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


예전에 전업 작가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뭐랄까. 물론 가정이 생겼고 나날이 커지는 아이가 있으니까, 더 책임감이 막중한 아빠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차원에서 내게 직장은 과거와 사뭇 다른 태도로 다가온다.


출근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근무지에서 일하니까 얻어가는 글감과 생각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글을 계속 쓰다 보니, 태도와 관점이 달라졌다. 존경하는 스테르담 작가님은 그 부분을 업과 에세이를 합쳐 '업세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무척 공감했다.


풀꽃 시인 나태주 선생님도 4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해오면서 시인으로 글을 썼다. 인터뷰를 통해 "먹고살기 위해서 교사가 되었다."라며 "본업인 시인을 위해 낮에는 교사로 일했다. 밤이면 사랑과 당신을 썼다."라고 말씀하셨다.


늦지 않게 그를 만나야겠다. 오랜만에 광양으로 출발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기억한다. 숲이 무성했던 그때가 괜스레 그립다. 진득하게 하염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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