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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

춘프카의 시네마틱 유니버스(Cinematic Universe)

by 춘프카



지난주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면모를 풍기는 소설가를 만났다. 낮에는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고 밤이면 적당한 온도가 느껴지는 조명을 비추고 소설을 썼다.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미발표 작품이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대부분 단편이었는데 "한편만 읽어봐도 될까요?"라고 은근슬쩍 물어봤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을 꿀떡 삼키고 그렇게 한편을 읽고 두 편을 읽고 세편을 읽었다. 무척 매력적이었다. 빠져 읽고 있으니 "혹시, 인터뷰하러 오신 거 아니세요?"라며 웃으며 묻는다. 나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들을 살펴봤다. 나름대로 며칠 고민해서 추려낸 물음표였다. 하지만 늘 인터뷰가 그렇듯이 상대방이 딱딱한 페이퍼과 함께 키보드를 두드리며 듣다 보면 편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마치 연출된 모습처럼 맥북과 질문지를 가방에 욱여넣었다. 그는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편하게 대화하시죠."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닥쳤던 수많은 고민들을 경청했다. 잠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감히, 그의 삶을 짐작할 수 있어서였다. 얼마나 고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그를 동경했다.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서 제법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다.


직업적인 특성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여러 사람을 만났다. 직업군도 다양했다. 청소 노동자부터, 교사, 변호사, 사업가, 주부, 고시생, 교수, 유튜버 외 다수. 말하는 것보다 듣는 데 익숙하고 체질에 맞는 나는 만족했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다른 차원과 공간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시야와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한 달에 열 통 남짓 고민 메일을 받는다. 추가로 지난달 7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심야 책방 <해방 클럽>에서도 경청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고민도 다양했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질문부터, 마음에 병이 찾아와 괴로운 시간을 통과하는 분도 있었다. 대뜸 연애 상담을 요청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과 각각 실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부분 결이 같다. 터놓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안 하거나 가족이 없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결혼을 코앞에 둔 예비 신부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경청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금 떠올렸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 다만, 단순히 듣기만 한다고 경청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말과 행동은 물론 그 속에 깔려 있는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다.'


여전히 어렵지만 노력하고 있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대목이 딱 맞으니까.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22년 5월 19일부터 8월 18일까지 3개월간 '경청'이란 단어로 연관어와 긍/부정 분석을 진행했다. 화면 참조. 자료 조사 : Sometrend 분석센터


추가로, 경청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관어와 긍/부정을 분석(22.5.19~8.18)했다. 사진 좌측은 긍/부정에 대한 워드 클라우드다. 긍정 평가 79.4%(8,216건) 중 상위 다섯 개 단어는 높은 순서대로 공감, 적극적, 잘하다, 사랑, 존중이었다. 부정 평가 18.4%(1,900건) 중 주요 단어는 갈등과 고민, 비난, 비판 등이었다. 우측 사진은 연관어와 관련 있는데 상위 단어는 마음, 생각, 이야기, 대화, 상대방, 감정 순이었다. 가끔 데이터를 통해 문제의 핵심을 쫓아갈 수 있다. 흔적이 남는다고나 할까?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8월 주제는 <경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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