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학생이 되다
9월부터 대학생이 되었다. 물론 업과 병행하고 있다. 뚜렷한 지식이나 기반 없이 공대생으로 졸업해 여기까지 온 것은 참 운이 좋았다. 인연도 기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에 대한 갈망은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다. 퇴근 후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오프라인 수업이었다. 교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마주치는 일은 훨씬 더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날 과제는 총 세 가지였다. 과목별로 하나씩이었는데 첫 번째는 드라마 구성안을 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스토리가 있는 30초 영상을 제작/기획하는 것, 마지막으로 한류문화에 대해 산문 쓰기였다. 마감일은 10월 31일 오후 6시까지. 일주일 남았다. 아, 기쁘도다.
같은 과 학생 대부분은 나보다 연배가 많으셨다. 같은 또래로 추정되는 분도 계셨고 몇몇 분은 이십 대 중반으로 보였다. 직업군도 다양했다. 대부분 문화, 미디어 계통이었다. 수년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분, 프리랜서 여행 작가, 공공미디어 협동조합 대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유학을 다녀온 후 문화-기획일을 맡아 각종 전시회나 사진전을 운영하는 분도 계셨다.
문제의 순간은 점심때 일어났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교수님의 제안으로 모두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뭔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재롱이라도 부려볼까, 잠깐 고민하다 말았다. 중간에 전임 학생회장을 맡으셨던 선배가 오셨는데 코로나19 이후 학생회장이 공석이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추천을 받고 추대하자고 제안했다. 덕분에 어색함은 극에 달했다. 서로 겸연쩍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는 있는 힘껏 딴청을 부렸다. 일부로 순대국밥도 열심히 먹었다. 순간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더니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전임 회장이 말했다. "우리가 많이 도와줄게요. 그렇게 어려운 일 없어요. 장학금도 받고, 선배들하고 커뮤니티도 구축하고. 다, 좋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아니요. 저는 몹시 바쁜 사람이라 그럴 순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계속 뜸을 들였더니 올해 예순다섯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신사분이 "나는 몸이 닿는 데까지 계속 공부하고 싶다. 대학은 세 번째 졸업했다(모두 전공이 달랐다). 그리고 지금 과에 네 번째 입학했다. 어렵지만, 즐겁다. 학생회장님,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한방이었다. "... 예. 그럼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학생회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