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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25. 2018

목표를 이루는 삶과 즐거움

<왜 공부하는가?>를 읽고

2017년 어느 늦은 가을에 씀

올해 계획했던 것 중에 하나가 영어 학원 기초반을 등록하는 것이었다. 세계화에 발맞추어 무언 갈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고, 다만 혹시라도 내가 외국인을 만났을 때, 최소한의 소통(?)은 되어야 될 것 같다는 느낌에 잡은 목표다.


덕분에 금요일이면 기초반 영어 수업을 듣는다. 3월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느는 것 같다. 물론 내세울 정도의 실력은 안 되지만, 학생 때보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무언가 색다른 느낌이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또, 활동이나 회합이 잡히면 빠지다 보니 그 비어진 공백만큼 공부를 향한 열정도 가벼워졌다.


무언가에 자극이 필요했고, <왜 공부하는가>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김진애라는 작가는 학창 시절이나 어른이 된 지금도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예전에, 인문학 특강의 강사로 와서 들었던 적이 있는데, 강의를 다 듣고 나니 막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김진애의 <왜 공부하는가>에는 저자의 공부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화려한 그의 경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서울공대에서 800명 동기 중 유일한 여학생, 30대에 MIT 건축 석사와 도시계획 박사를 취득했고, 40대엔 미 시사주간지 <타임> '21세기 리더 100인'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등재했다. 50대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풍부한 건축지식과 바핀적 지성으로 '4대강 저격수'를 자처하며 임기 중 의정활동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에는 공부를 주제로 한 그의 일대기가 담겨 있다. '공부 자서전'으로 봐도 좋겠다. 또는 고수의 공부 철학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그의 공부이론은 6가지로 나뉜다.


첫째, 공부비상구론이다. 1남 6녀의 딸 부잣집 셋째였던 그는 고교 시절에는 영화와 책 읽기에 빠져 살던 평범한 소녀였다. 학교 공부를 등한시하던 그가 고2 앞으로 1년, 오직 공부만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포위당했다고 회상한다. 지금 이 순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고, 독립할 수 있는 밥벌이를 못할 것이 명백했다. 그의 꿈은 "내가 벌어서 먹고살 거야!"였다. 그런 독립심과 자존심이 공부를 해야겠단 결단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P. 58
다행히 인생은 수없이 많은 결단의 순간과 그 결단을 지킬 기회를 예비하고 있다. 그 순간과 그 기회를 어서 한번 잡아보자. 여하튼, 결단이란 매혹적인 것이다. 지키기란 결단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결단의 매혹에 빠져보자. 독하게 결단을 지켜보자. 그리하여, 결단의 기억을 쌓고 자신을 믿어보자.    


둘째, 공부생태계론이다. 이 장에선 분위기 자체가 다른 MIT 공부 환경을 다룬다. MIT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 교류와 창업 비즈니스의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거대한 공부 생태계'였다. 또, MIT는 우리가 알고 있던 대로 일개 공대가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들의 활동 무대였다.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MIT 미디어 랩으로 세계적 학자로 부상한 니콜라스 네그로폰데 등 우리 시대의 멘토이자 스승들과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준 곳이 MIT였다.


김진애는 거대한 공부생태계가 선물한 생생한 호기심과 깊은 안목으로 문제 창조 정신, 현장 정신, 창업 정신 세 가지를 배웠다고 썼다. 그의 공부 이론은 '창업은 인생 최고의 공부'라는 공부 실천론, '리더보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훈련 공부론으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이론은 건축가로서 학계보다 현장을 선호했던 그의 독특한 현장 공부론으로 봐야 하겠다. 창업이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장은 공부를 실전에 적목 시켜, 사람을 단련시키고 아마추어를 진정한 프로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공부 그라운드였다.    


내가 유독 흥미롭게 읽은 것은 그의 '놀이 공부론'이다. 일의 최고 단계는 즐기는 것, 즉 놀면서 일하는 것이다. 일을 놀면서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인생은 축복 아닐까? 놀이와 공부가 일치하고 놀이와 일이 합일되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 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빠지기를 좋아하는데, 무엇을 하든지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놀이에 집착했더니 결국 그것이 공부가 되더라는 얘기다. 라디오 왕, 노래광, 팟캐스트광으로 살았더니 듣기를 통해 분별력과 판단력 등 지적 능력이 길러졌고, 소통능력, 분위기를 조율하는 능력까지 덤으로 얻었다. 또, 상상력을 키워준 만화 읽기, 무한한 공부의 주제를 담아낸 영화 보기, 깨달음을 건네준 걷기와 여행 등은 삶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것이었으니 과연 옹부의 최고 경지다.


P.175 교육이라는 말 대신 내가 좋아하는 말은 '자라기, 깨닫기, 묻기, 답하기, 해보기'같은 것들이다. 부풀려 표현하자면, 나는 '소크라테스'적이고, '아인슈타인'적이며, '다빈치'적이다. 우리 식으로 풀어보자면, 나는 '연암 박지원'적이고, '퇴계 이황'적이고, '고산자 김정호'적이다. 했던 일 이상으로 이들의 삶의 방식, 자라기 방식이 좋다. 표현하자면, 이들은 인생을 한바탕 잘 놀다 간 것 아닐까? 나도 그렇게 잘 놀다 가고 싶다.  

"왜 공부하는가?"라는 저자의 물음을 생각해 본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루고픈 꿈과 목표를 위해!라고 조심스레 답해본다. 아직 놀이로 승화시킬 정도의 레벨은 아니지만, 조금씩 착실하게 읽고 쓰고 느끼고 행동하며 공부하는 어른으로 더욱 성장해 갈 것을 결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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