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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27. 2018

[다시 쓰는]인생은 여행이다

서툴러도 좋다

8월 7일 제주도의 마지막 밤은 친구가 사주는 맛있는 갈비로 마무리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제주도의 떠나는 오늘은 가장 일찍 발걸음을 옮겨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었다. 출근하는 친구를 마중하고, 버스를 기다렸고 얼마 뒤 시간에 맞춰 무사히 탑승했다. 내가 탔던 곳은 제주 월드컵 경기장 부근이었다. 그리고 내리는 곳은 중앙로타리라 불리는 정류장이었다. 버스 안은 출근하러 가는 분들의 모습이 가득 띄었다.


15분쯤 탔을까? 금새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 어제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급하게 눈구경만 했던 이중섭거리로 발걸음을 향했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침 7시 30분이 막 지났다. 배가 슬슬 고파지고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는 중에 <이중섭 식당>이라는 조금은 허름한 식당이 보였다. 아침부터 장사하는 곳도 잘 없고해서 망설임없이 들어갔다. 매뉴판을 보니 고기국수가 눈에 띄었다. 눈꼽을 떼고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정중히 '고기 국수 하나요!'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날 물끄러미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아침부터 국수는 못해준다. 국수 먹고 싶으면 근처에 국수전문점있다. 거기서 먹어라.'고 말했다.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배가 고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아저씨. 그럼 김치찌게 하나 주세요!'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중섭거리를 찬찬히 돌았다가, 천지연폭포를 가고...'

혼자서 남은 여행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김치찌게가 떡하니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아저씨!'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국수 때문에 조금 빈정상하긴 했지만, 맛있다면 만사 오케이 아니겠는가. 뻘건 국물에 밥을 비벼 한입 물었다. 그런데... 맛이 미묘했다. 분명 여기는 <이중섭 식당>인데... 천재화가 이중섭 선생님은 정녕 이렇게 짜디짠 김치찌게를 즐겨드셨단 말인가. 충격적인 맛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먹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듯 보이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밥 한 공기를 금새 해치우고, 카드지갑을 꺼내려 배낭을 뒤적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카드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정신없이 버스를 타고 거기에 만족해서 나는 그만 좌석에 카드지갑을 고스란히 두고 온 것이었다. 충격적인 맛과 공포에 휩싸였다. 글썽거리는 내 눈을 보던 아저씨는 무슨 일 있냐고 했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며 현금을 꺼내 급하게 계산하고 나왔다.


식당 앞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모두 계산했다.

1만 8천원.

친구에게 물어보니 내가 있는 곳에서 제주공항까지 가는데만 최소 5천원이 넘는 차비가 든다고 했다. 일단 아까 먹었던 김치찌게가 오늘의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니, 더 감사하게 먹을 것을 이라 중얼거렸다. 근근히 제주공항까지 간다고 해도, 비행기에 탑승해 김해공항에 도착해서 창원으로 넘어가는 것도 차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상황을 어떻하면 좋단 말인가.



정확하게 딱, 10분 고민했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날 보고 손 흔드는 아저씨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시원한 곳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기운내서 남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천지연폭포 매표소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입장권을 내고 한걸음 한걸음 더욱 정성껏 걸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장면 하나 하나를 세세하게 포착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제주도와서 느낀 건데, 어딜가나 중국 여행객들은 무지하게 많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어느새 눈앞에 천지연 폭포가 웅장한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건냈다.




 한참을 멍~ 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중국 여행객 중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내게 뭐라뭐라 말했다. 중국말이라 무슨 말인지 몰랐다. 막 웃으면서 말하는데, 나는 그저 '몰라요, 몰라!'만 반복했다. 여성은 갑자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하더니, 빵 하나를 건내줬다. 옆에 있던 이쁜 딸이 내게 한국말로 말했다. '저기, 우리 엄마가 그 쪽 혼자 여행온 거 같은데, 우울해보여서 힘내라고 말한거에요. 빵 하나 드세요.'라고 말했다. 떨리는 손으로 빵을 잡았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빵을 받았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었다. 사진이 잘 나왔다, 고맙다고 계속 말했다.


천지연 폭포를 지나 다시 시내로 가는 중에 집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는 근처 은행을 찾아서 재발급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다행이 근처에 은행이 바로 보여서 들어갔다.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직원은 상냥한 미소로 재발급 가능하다고 걱정말라 한다. 걱정말라는 말에 눈물이 난다(난 원래 눈물이 많다. 물론 진짜 운 것은 아니다).



그 이후로 먹고 싶었던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건축 카페>라 불리우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제주도의 남은 하루를 글로 정리했다. 쓰면서 미소가 번져 나왔다. 참 짧은 5박 6일 시간동안 많은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여객선 안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 3총사와 인생을 논했고, 눈치싸움만 하다 먼저 용기내서 말을 건냈더니 어느새 서로 연락처까지 교환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고, 제주도의 소주와 막걸리는 정말 맛있었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하는 수줍은 미소의 형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 거렸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정신없이 가다가 멈춰서도 내 눈앞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면들이 가득 보였고, 지갑은 잃어버렸지만 충격적인 김치찌게와 중국여행객 가족에게 받은 팥빵을 얻었다.


인생도, 여행도 마찬가진가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만 달리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있다. 흥미롭고 두근거리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멈추지 않고 걷다보면 새로운 장면과 인연들이 내게 찾아왔다. 인생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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