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쓸 이야기가 많다. 한참을 쓰다가 너무 솔직하게 기록했나 싶으면 '발행' 대신 '저장' 버튼을 누른다. 이내 작가의 서랍으로 향한다. 그렇게 미처 빛을 보지 못한 글들이 수두룩하다.
요즘은 더 그렇다.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되는 변화로 좀처럼 영점을 잡고 쓰기가 어렵다. 전후 맥락 없이 일부분만 읽는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그 지점을 알기에 낱낱이 쓰지만 조심스러움이 밀려온다. 얼추 상황이 정리되면 그때쯤 공개하자고 혼자 중얼거린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작가는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이해와 실제 행동의 간극은 언제나 어렵다.
2. 오전부터 분주했다. 집안일을 마치고 차량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여행가방에 여벌, 속옷, 공부해야 될 자료와 논문, 책들을 가득 담았다.
잠깐 숨을 고르고 무인 카페에 들어섰는데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노트북과 큰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기록했다. 스케치북 한 면을 작은 글씨로 가득 채우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머릿속 생각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3. 오늘은 뭘 써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메일 알람이 울린다. 원고 청탁이다. 00 재단인데 지방소멸, 청년귀촌 현상 등을 키워드로 '담백한 글'을 요청했다. 담백한 글이라. 이어 마감 기한을 일주일 제시하는 흥미로운 상황. 잠깐 멍하게 모니터를 바라봤다. 우선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어디서 읽었는지, 그리고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진 않지만 '프로는 결국 그 일을 정해진 시간 내에 해내는 사람'이라 이해했는데... 나는 겨우겨우 쳐내는 수준이니 그 경지까지 이르려면 시간과 내공이 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