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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May 22. 2024

책방 주인장이 되는 과정

스무 살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블로그를 시작했다. 첫 글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막연한 꿈을 썼다. '나만의 도서관(책방)을 짓겠다'고. 책벌레는 아니었지만 책을 '그냥' 좋아했다. 장르는 대부분 연애소설이나 시, 잡지, 만화책 등이었다. 마음이 뺏기면 반복해 읽다가 훌쩍거리곤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는 날이면 서점부터 들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책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분위기가 좋았다고나 할까. 그 습관은 줄곧 이어졌다. 


2015년 낯선 광주에서 타지생활을 시작하면서 10평 남짓한 공간에 처음 마련한 가구도 (경남에서부터 쓰던) 책장이었다. 텅 빈 방에 책장 하나 놓여 있었지만 허한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내와 연애시절에도 "정년퇴직하면 작은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그러면서 "말수를 좀 줄이고 이야기를 잘 듣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평생 다닐 것만 같던 직장을 퇴사하던 해, 심야 책방 '해방클럽'을 열었다. 자본금을 마련해 둔 형편도 아니었지만, 시도했다. 에어비엔비로 20평 규모 사무실을 빌렸다. 한 달에 딱 한번 열리는 책방은 '손님이 떠날 때까지 운영한다'는 간단한 방침만 세워둔 채 모집글을 올렸다. 


각자 인생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낯설고도 익숙한 '우리'가 만났습니다. 
챙겨 온 책을 꺼내 한참 빠져 읽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는데요.
마음속에 떠오르는 첫 감정은 '행복'이었습니다. 
이렇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은 시간, 공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좋았어요. 

-심야책방 '해방클럽' 첫 모임에서 


운이 좋았던지 결이 닮은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려왔던 풍경을 현실로 마주했을 때 그 저릿한 기분은 잊을 수 없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는 문장을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낭독회를 진행했습니다. 각자 읽고 밑줄 그은 문장을 소개하거나 느낀 소감을 전하는 시간이었어요. 다들 차분하게 말씀해 주셨고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영감을 받았어요. 미세한 떨림도 좋았어요. 

나왔던 책 중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도 있었고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시미 이치로의 <불안의 철학>,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 타라 덩컨의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이서윤, 홍주연 작가의 <더 해빙(the having)>, 루이스 L.헤이 <치유> 외 다양한 책과 문장을 접했답니다.

-당시 쓴 글


반년 남짓 운영된 책방은 이후 내가 부산으로 이직하게 되면서 멈추게 됐다.


매달 빠짐없이 참석하던 분들은 온라인으로라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쉽지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 직장 생활을 각오한 만큼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다만 올해 2월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얻게 된 짧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일회성으로라도 열어볼까 고민 중이다. 늘 인생은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으니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지난 주말. 아들과 동네 여행을 떠나기 전 놀이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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