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2만 점이 넘는 작품, 아인슈타인은 240편의 논문, 바흐는 매주 한편씩 칸타타를 작곡했다. 에디슨은 무려 1039개의 특허를 신청했다. 고수들은 좋은 작품 못지않게 형편없는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한근태의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중에서
2010년 마산 석전동의 한 골목 카페에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다. (물론 일기는 계속 끄적였지만, 진심을 담아 쓴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무엇을 써야 될지 몰라 마산역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감 삼아 썼다.
두 시간쯤 썼으려나. 분주한 손을 내려놓고 읽었는데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무명이라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정도 실력으로 무슨 기자가 되겠다고, 뻔뻔한 나를 한없이 탓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티스토리와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스토리 등을 거치면서 개똥 같은 글을 힘차게 썼다. 글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광고성 댓글만 무성하던 내 공간에 제대로 맥락을 파악하고 마음을 담아 흔적을 남겨주시는 독자들이 생겨났다.
브런치스토리에선 쓴 글(꿈이 후회로 바뀔 때 사람은 늙는다)이 큰 반응을 일으키는 관경을 처음 목격했다.
당시 3년간 이곳을 운영하면서 구독자는 20명 남짓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 가족과 지인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구독자가 대거 늘어났다. 댓글에 각자의 사연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날 닮은 또 다른 존재였다. 쉼 없이 울리는 알람소리가 흥겨워 어깨가 들썩였다. 무엇보다 가장 힘을 빼고 쓴 내 경험이 많은 이들의 일상에 닿는다는 사실이 기뻤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기자가 됐다. 세상의 초고를 하염없이 쓰면서 울고 울었다. 우리 일상 곳곳에 맥락 없는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냥 쓰자.
형편없는 글이라도 주저하지 말자.
우리가 익히 아는 저명한 작가, 예술가 등도 그 과정을 거쳤다. 형편없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진짜의 무언가를 포착해 냈다. 멈추지 않았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동네 조용한 카페에 앉자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한 뒤 바깥 풍경을 살핀다. 문득 14년 전 처음 무엇이라도 써보겠다고 방황하던 내가 떠올랐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형편없는 글을 쓰느라 좌절하는 내게 말해주고 싶다.
걱정하지 마.
결국 꿈을 이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