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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Jun 27. 2024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사촌동생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

제겐 올해 스무살이 된 사촌 동생이 있습니다. 형 노릇을 제대로 못했지만 한 뼘씩 자라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게 행복했는데요. 어느새 그가 스무 살이 됐습니다. 낯선 타지에서 대학 생활하는 동생을 위해 쓴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혁! 스무 살의 6월은 어떤 풍경이냐. 


기말고사 준비하느라 흐트러진 꽃이나 밤하늘의 별 따위를 볼 시간은 없겠지. 얼른 시험을 (잘) 마무리하고 힘껏 놀았으면 좋겠다. 


형이 대단한 위치에 있거나 혁이가 본받을 정도의 어른다운 면모를 과시하진 못하지만... 앞으로 혁이의 멋진 인생을 응원하면서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 생각해봤어. 오늘 편지를 쓴 이유야. 


하나. 사랑이 전부다

20대를 통과하면서 사랑만큼 자신의 볼품없음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힘껏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힘껏 사랑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 그걸 명심해.  


이왕이면 마음도 얼굴도 이쁜 사람을 만나길. 투덜거리는 사람은 피해. 자주 만나는 사람과는 점점 닮아지거든. 좋은 기운을 주는 그녀를 찾아. 형은 운 좋게 만나서 3.5년 연애하고 5년째 무사히(?)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단다. 



둘. 여행가가 되자 

언젠가 읽던 책에서 이런 말이 등장한다.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다.'


감상의 폭을 확장시켜주는 것은 여행이다. 낯선 사람, 낯선 풍경 등을 만나면서 감상의 폭을 확장시켜준다. 


돈이 없다고? 그럼 아르바이트를 하면 돼. 아르바이트를 하는 목적이 분명하잖아. 나중에 직장 다니면서 월급 받으면 여행할 시간 많다고 하는 어른들이 있을 텐데, 믿지 마. 


스무 살에 겪는 행복과 서른 살의 겪는 행복은 다르다. 미루지 마. 하고 싶으면 그냥~ 해버려. 


낡은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가끔은 뚜벅이가 돼 세상과 마주해봐. 


셋. 글을 써라


형이 지난해부터 (아니 조금 더 세월을 거슬러 고1 때쯤) 블로그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잖아. 그치? 네 블로그를 만들고 처음 쓴 포스팅을 공유해 줄 때 행복했어. 문제는 그게 올해 1월이라는 사실이고 이후 글쓰기를 멈췄다는 사실^^


대학 생활 하느라 얼마나 바쁠 텐데, 글 쓸 시간이 어디 있겠냐! 라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은 아주 쬐끔이고.. 그럼에도 혁이가 '글 쓰는 존재'로 살아가면 좋겠다. 


형도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에 일기를 자주 끄적였지만 진지하지 못했어. 심지어 그때 생각을 다시 찾아 읽어보고 싶은데 방도가 없다. 



철저하게 서툰 스무 살을 써봐. 쓰면 쓸수록 여행과 같은 맥락에서 감상의 폭이 넓어진다. 


처음엔 내 이야기,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써. 어쩔 수 없다. 쓸 수 있는 글감은 나밖에 없잖아.  근데 계속 쓰면 변화가 일어나. 주어가 '나'에서 '타인'으로 바뀌거든. 


엄마의 삶, 아빠의 삶에 대해서 아들이 아닌 작가의 시선으로 써봐. 흥미로울 거야. 네가 몰랐던, 숨은 이야기들이 많아. 다 쓰고 나면 꼭 형한테 보내주고. 


원고료는 아니지만 전라도 맛집 기행 참여권을 줄게. 몸만 와. 모든 건 형이 알아서 할 테니까. 


자, 이제 마지막이다. 


넷. 멋진 실패를 반복해


'실패'한다는 말을 형은 '시도'로 읽어. 시도하지 않으면 삶은 무료해진다. 삭막해져. 지루한 나날을 그저 견디는 거야. 우울하지. 


혁이 지난 4월인가 그랬지. 스무 살 버킷리스트에 쓴 대로 대학 밴드부 보컬에 지원했고 몇 차례 떨어졌다고. 그럼에도 다시 도전해서 결국 합격했으나, '연습생'(?) 신분처럼 무대엔 오르지 못해 아쉬워했잖아. 


형은 속으로 웃었어. 잘하고 있구나, 생각했지. 

때때로 삶은 성공한 기억보다 실패했던 경험으로 안주를 삼아. 


형이 스무 살이 되는 혁이에게 하고 싶은 말 4가지를 정리했어. 잔소리가 많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심플해. 


'후회'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말로 들릴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진 않아. 그냥 시도해. 계속.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광주에 놀러 와. 블로그에 글 안 쓴다고 해서 밥을 안 사주거나 그러진 않을게. (다만 답장은 받았으면 좋겠다...) 


혁, 사랑해.

잘 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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