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글방 첫 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송00입니다. 00으로 살아온 지 올해로 12년째입니다. 누가 봐도 12살로 보이진 않는데, 당황하셨을까요? 실은 사연이 있습니다. 개명을 했거든요. 제가 태어났을 때, 외할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이름은 '춘수'입니다. 따스한 봄날. 그날도 비릿한 바다 냄새를 안주 삼아 약주를 드시던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봄이 왔다. 봄이 왔으니, 春(봄 춘)에 受(받을 수)를 써서 춘수로 하자."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렇게 저는 춘수로 20년 가까이 살아왔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여기에 다 쓰진 않겠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쓰다 보면 여러분 모두 제 시선에서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학창 시절, 이름 덕에 놀림을 종종 받았습니다. '춘'자가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촌스럽다는 말도 했고요. 제가 정말 잊지 못하는 소설 하나가 있는데요. [요람기]라는 단편소설입니다. 어느 날, 국어책에서 그 소설이 기재되었는데, 남주인공의 머슴으로 일하는 친구가 하필 '춘돌'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자연스럽게 '춘돌'이로 불렸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매년 새 학기가 돌아오면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늘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춘수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게도 봄날이 찾아왔습니다. 시를 자주 읊으시던 여선생님께 난생처음으로 "좋은 이름이다. 글을 쓰고 싶어 지는 이름이다."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그분 외모가 상당했음을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한 번의 격려 덕분에, 제 이름이 좋아졌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존경하는 김춘수 시인처럼 사랑 시를 끄적이던 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쓴 시는 소중한 친구에게 가장 먼저 보여줬습니다. 제 기대와는 달리, 친구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분주하게 손을 놀려 가까운 휴지통에 구겨 넣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춘수가 좋아졌습니다.
저는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호흡을 내쉬며 제 이름 '춘수'를 떠올립니다. 좋은 글을 써야 된다는 무게감에서 벗어나 어깨에 힘을 풀고 조금씩 써지는 주문 같은 순간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오늘 글은 어떻게 마무리해야 되나 염려했는데요. 욕심내지 않고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금세 쓰신 분들의 따스한 눈빛이 제 손가락을 멈추게 합니다. 앞으로 춘수, 보현, 봄, 춘돌 무엇이라도 좋으니 편하게 불러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