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청춘에 대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될까.
20대 시절 습관처럼 자문했다. 그 모습이 얼핏 그려졌지만 막연했다.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도 어려웠다. ‘누군가 내게 지금 몇 퍼센트까지 왔다거나 이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해 줬으면 좋겠다’고 일기에 썼다.
그 무렵이었다. 평소 말주변이 없던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별다른 조언 대신 주섬주섬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내밀었다.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해 늦은 새벽에야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소설을 읽는 이유를 그때 알았다.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이 많았다. 마음이 허할 때마다 위로처럼 다가온 책과 영화, 사랑, 여행, 사람. 덕분에 좁았던 내 세계관이 점차 넓혀졌다. 그 즈음 만난 문장.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글 쓰는 삶을 품은 뒤 지금까지 한 번도 쉰 적 없다. 수려한 문장은 아니지만, 계속 썼다. 그 과정에서 눈물 많은 기자가 됐고, 형편없는 책을 냈다.
무능을 탓하며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숱하다. 기사 하나 쓰는데 며칠 밤낮을 샌 적도 있다. 이제는 뭐랄까, 좀 무뎌졌다. 느리더라도 치열하게 살아온, 지나온 시간과 나를 믿게 됐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저자는 말한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 이 문장을 인용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 20매의 원고를 쓴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이라고 했다.
가끔 과거 질문을 소환한다. ‘어떤 사람으로 살게 될까’
5살 아들에게 물음표를 옮겼다.
“아빠가 15년 뒤 네가 스무 살 됐을 때 뭘 하고 있을까?”
“뭔가 쓰고 있을 것 같아. 사람도 만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