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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Jul 04. 2019

연애편지 아닌 타인을 위한 글쓰기

학창 시절 나의 글쓰기 대부분은 연애편지였다. 밑줄 그었던 시집 내용을 정성스레 편지지로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평소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녀석이 한 명 있었는데, 3일간 무단결석을 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반응은 일관됐다. ‘그런 놈인 줄 알았다’고 비아냥 거렸다. 나는 궁금해졌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학교 내에서는 정보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곳저곳을 물어봐 겨우 집주소를 알아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주소지를 찾아갔다. 도심을 벗어나 숲이 무성한 산동네였다. 겨우 도착하여 위태롭게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었다. 곧장 내 시선에 잡힌 것은 친구의 어머니였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이셨다. 친구는 집을 나간 지 며칠 됐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단다. 어머니는 수년 전 사고를 당해 제대로 걷지 못한다고도 말하셨다. 아주머니 곁에 있던 7살짜리 여동생은 내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라 말하고 나왔다. 수소문 끝에 친구의 행선지를 파악했고, 만날 수 있었다. “돈을 벌어야 된다.” 어색한 미소로 내게 말했다. 일단 알겠다, 다들 걱정하니까 집으로 우선 들어가,라고 말하고 서둘러 나왔다. 마음 같아선 더 듣고 싶었지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그냥 와버렸다.


출처 : 꿀마넴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 친구와 집안의 상황을 전했다. 선생님은 대답 대신 자리를 피하셨다. 황당했다. 심지어 며칠 뒤 친구를 퇴학시키겠다는 소문이 돌았다. 화가 치밀었다. 교무실을 찾아가 “이건 아닙니다. 00의 집을 찾아가 사정을 듣고 다시 결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 선생님이 침묵을 깨고 터벅터벅 내게 다가왔다. 다정한 답변을 기대했던 나는 다른 선물을 받았다. 선생님의 두꺼운 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네가 뭔데 난리고? 그런 놈 신경 쓸 시간 있으면 니부터 똑바로 살아라.”


맞은 뺨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타인의 삶에 동고 하고 그 마음 때문에 분노했던 순간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글을 썼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도교육청 홈페이지에 내가 봤던 친구의 상황들을 써서 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을 담아 친구를 위해 쓰는 것, 그것뿐이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를 다 쓰고 나니 힘이 빠져버렸다. 이 방법도 통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번민하고 있는데 다음날부터 내가 쓴 글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교육청 관계자들이 학교를 찾아왔고 친구의 집을 실제로 방문해 여러 상황을 파악했다. 며칠 뒤 거짓말처럼 친구는 학교를 다시 나왔다. 물론 졸업식도 함께했다. 그날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가장 오래 기억하는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연애편지의 성공 여부에서 느껴지는 짧은 여운과는 다가오는 파동이 사뭇 달랐다. 누군가를 위해 쓰는 글, 조금이라도 내가 속한 세계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다짐. 그때의 결의는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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