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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Jul 18. 2019

아버지는 시인입니다

모든 사람과 사물에는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2019년 7월 14일 토요일 오후


  나는 한반도 최남단, 전라남도 고흥군 동남부에 위치한 마을을 걷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란 지인과 함께. 우린, 1년 가까이 서로를 알고 지낸다. 그는 꽃다운 이십대 중반의 청춘이다. 말투는 느리지만 차분하고 따뜻하다. 특기는 수줍은 미소. 마음이 섬세한 사람이다.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표현하는 방식이 특히 더 그랬다.    


  이 마을은 낮과 밤 풍경이 다르다. 우리가 만났던 때는 보통 깜깜한 밤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쨍쨍한 햇볕이 도는 낮이었다. 그 덕분에 주변 경관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은 깊은 대화를 선물했다. 여러 주제가 오갔다. 그는 몇 년 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던 때를 말했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 아파트 하나가 보였어요. 그날따라 고향 밤하늘이 그리웠던지, 아파트에 비치는 여러 집들의 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느껴졌어요.” 차분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멋진 표현이지 않은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로 함께 빨려 드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글 한번 써보면 어때요?” 


출처 : https://notefolio.net/kyoonart/127595


  그는 특기를 선보였다. 수줍은 미소.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실은, 저희 아버지가 시인이세요.” 평소에도 충분히 큰 내 입이 더 커졌다. 이게 웬일인가. 1년 동안 적잖게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이제야 듣다니. 진작 글을 써보라고 말했으면 들었을 텐데. 머리를 긁적이며 동경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괜히 부러웠고, 그 감정을 내 표정으로 전했다. 집안 곳곳에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은 여러 시들이 가득하다고도 말했다. 당장 찾아가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앞으로 우린 계속 볼 사이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순간의 감정들을 기록했다. 좋은 시 하나가 나오면, 직접 카메라를 챙겨 들었다. 가까운 주변 경관을 유심히 지켜본 뒤, 시에 딱 맞는 사진 한 장을 담았다. 그런 모습을 어렸을 적부터 지켜본 그였다. 아버지를 닮아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했구나. 역시 시인의 아들은 다르구나,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참을 걸었더니 등 뒤로 땀이 흥건하였다. 그늘 아래서 숨을 고르며, 대화 주제를 전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년이 떠나는 고흥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실제 거주하는 청년으로써의 현실적인 질문이자 고민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핏 작년 처음으로 고흥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곳의 입장을 알리는 첫 글귀. ‘지붕 없는 박물관 고흥’ 맞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 박물관을 설명해주고 안내해주는 이는 잘 없다. 물론 관공서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 여러 고민들을 할 것이다. 뉴스를 통해 2028년 관광객 1천만 명 유치를 위한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나, 가끔 찾는 나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는 주변 산과 바다 여러 곳의 숨은 명소와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알려줬다. 흥미로웠다. 한참을 빠져 들었다. 우린 다음 여행(?) 계획을 세웠다. 시기는 8월의 끝자락. 목적지는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팔봉산. 정상을 오르면 저 멀리 대마도까지 조망되는 곳이란다.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절경은 일품이라고. 듣기만 해도 설렌다. 처음보다 한결 밝아진 그의 표정을 보니, 좋다. 앞으로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을 테니, 한번 해봤으면 한다. 우린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때때로 무엇을 써야 될까 고민할 때면 다시 읽는 문장을 떠올렸다. 오늘은 그 문장 같은 날이었다.    




아이디어(글감)를 찾는 비결은 모든 사람과 사물에는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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