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인 Brain Feed 1화
최근 저는 브런치에 새 글을 올리는 일도 하고 있지만, 또 2017년에 정리했던 사내 칼럼 자료들을 브런치에 옮기는 것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제로 서비스디자인 Brain Feed가 붙어 있는 건 모두 2017년에 작성한 글이라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당시 점점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던 "브랜드 경험/서비스 디자인"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었어요. 일을 하다 보면 다른 브랜드에서 시작되는 의미 있는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잖아요. 그래서 당시 제 칼럼의 목적은 예전에 맘 맞는 친구들과 브랜드 스터디를 하듯이 흥미로운 사례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었습니다. 당장은 현업과 멀어 보이는 브랜드의 사례들이 당시 회사 분들을 포함하여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짧은 순간이나마 신선한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
재미있는 사례들을 소개해 드리기에 앞서 첫 번째 칼럼만큼은 조금 진지하게 내용 정리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말랑한 시각을 갖자고 해 놓고서는 처음부터 딱딱한 글이라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 칼럼의 대주제인 "브랜드 경험/ 서비스 디자인" 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브랜드 경험 설계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한 번은 언급이 되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시작합니다.
2016년 최고 브랜드의 기준
1999년부터 매해 꾸준히 세계 100대 브랜드를 발표하는 인터브랜드는 모두 잘 아시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으며 기업 평가의 객관적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브랜드에서 발표한 2016년의 100대 브랜드 가운데 10대 브랜드만 간추린 표가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브랜드들이 매년 엎치락뒤치락하며 10위권을 장식합니다. 플레이어들을 보면 4위까지는 작년과 비교해 아예 변동이 없고, 작년에 10위권에 들었던 맥도널드가 10위권 밖으로 나가면서, 벤츠가 10위권 내로 진입한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이 열 개의 브랜드를 선정한 방법은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듯이 크게 브랜드의 성장 수준과 브랜드 별 세계적인 입지라는 두 가지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객관적 지표로 평가하기 위해 인터브랜드에서는 5가지 항목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브랜드 인지도와 같이 사람들의 호불호에 주목하는 기준도 한 가지 포함이 되어 있지만 대부분 계측 가능한 회계적인 근거를 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세계적인 인프라를 구축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유지하고 있는 덩치가 큰 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상위 순위는 변동의 폭이 크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100대 브랜드와 함께 꼭 보셔야 하는 것이 브랜드의 성장률을 기준으로 정리한 순위입니다. 아래의 표는 작년 한 해 브랜드 성장률만으로 평가한 브랜드들의 순위입니다.
성장률만 가지고 평가했을 땐 페이스북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아마존이 30%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지요. 각각 다시 인터브랜드 100대 브랜드 위치를 살펴보면 페이스북은 2015년 기준 25위에서 2016년 15위로, 아마존은 10위에서 8위로 올라섰습니다.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상위 그룹에서 2 계단을 오른 아마존과 10 계단이나 뛰어오른 페이스북의 성장 동력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다만, 인터브랜드의 보고서에서는 이 무시무시한 브랜드 성장의 가속 장치를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고객 서비스를 충실하게 고민한 브랜드 경험 설계라고 단언합니다.
브랜드 경험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 수많은 브랜드들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 내는 걸까요?
경험, 밀레니얼, 그리고 브랜드
Warren Buffett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브랜드가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지 않다면,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경험이야말로 "그 무언가"라고 말을 하는 브랜드 매니저, 마케터,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인터브랜드의 CEO도 브랜드 경험의 중요성을 피력했습니다.
경험이 강조되는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예전에 주목했던 X 세대 소비층에게는 "브랜드 = 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정도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하는데 치중했습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가장 막중한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는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스스로의 경험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경험을 제공하는 이벤트 등을 통해 사교하고,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을 나누면서 관계가 깊어지고, 경험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소비의 주 계층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의 파급력이 점차 커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미지보단 경험을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렇다면 브랜드 경험은 무엇일까요? "브랜드 사전"을 집필한 마티 뉴마이어 (Marty Neumeier)의 말을 빌자면, 브랜드 경험은 "사람이 제품, 서비스, 기관과 하는 모든 상호작용이자 브랜드의 원자재"라고 합니다. 점차 브랜드는 일방적으로 기업에서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브랜드의 다양한 접점에서 직접 체험한 브랜드에 대한 기억과 감정의 총체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이건 마치 어떤 사람의 인상을 떠올릴 때와 같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내가 직, 간접적으로 그 사람을 경험한 바를 통해 만들어지듯이,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브랜드 경험을 "브랜드가 인상을 남기는 순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순간을 경험이 내포하는 일시적 혹은 연속적인 시간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인상은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행위의 상호작용을 통해 촉발하는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디자인과 비즈니스 컨설턴트 Clement Mok은 "경험이 바로 브랜드"라고 말을 했습니다. 브랜드와 경험을 등식으로 둘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요즘 같은 멀티-채널, 멀티-터치 포인트, 소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브랜드를 관리함에 있어서 브랜드 경험은 더욱 강조되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경험 디자인 = 체험 요소 디자인?
브랜드의 경험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입체적으로 정의하면 경험 디자인은 온•오프라인 상업 공간에서 체험 요소를 디자인하는 지엽적인 정의를 벗어납니다. 브랜드의 모든 층위에서 브랜드를 경험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경험 디자인입니다.
경험 디자인은 경험 설계의 범주에 따라 브랜드 경험, 고객 경험, 사용자의 경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브랜드 경험은 가장 광범위한 경험 설계입니다. 브랜드를 통해 하고 있는 사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고객이 인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극 요소를 설계하고 고객의 반응을 유도하는 브랜드 행위 일체를 의미합니다. 자극 요소라고 하는 건, 브랜드 디자인을 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항목들인 BI, 제품, 커뮤니케이션 툴, 그리고 브랜드가 만들어 내는 환경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브랜드를 새로 만들거나 브랜드의 대대적인 리뉴얼 시에 필요한 설계입니다. 다양한 자극 요소의 안배와 요소들 간의 협주를 기획하여 고객들이 브랜드와 마주하는 순간의 인상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고객 경험은 특정 고객에게 어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정 고객에게 브랜드와 관련된 정보를 거부감 없이 전달하고, 판매로 연결하는 과정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강남에 새로 매장을 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매장이 어디에 언제 여는지에 대해서 고객이 알고 매장에 들어올 마음을 들게 만들고 고객이 들어와서 매장을 둘러보고 제품을 사기까지의 전 과정 한 가지에만 좀 더 집중해서 서비스 로드맵을 기획하는 것이 바로 고객 경험 설계의 차원에서 논의하는 항목입니다.
세 번째, 사용자 경험은 보통 신규 제품, 신규 서비스, 혹은 이미 존재하는 경험의 방식을 향상하고자 할 때 고려하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립 제품을 기획하고 그 제품의 생애 주기에 따른 사용자의 경험을 고려하거나 웹사이트에서 고객들이 보다 쉽게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검색 방식을 개선하는 등의 상황에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해당 사용자가 "실제 제품을 사용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을 때"의 경험을 설계하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크기로만 보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숲의 설계, 고객 경험은 나무, 사용자 경험은 잎의 설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서비스 디자인은 이 모든 층위의 경험 설계를 하는 과정에 필요한 도구와 방법을 제안하고 적용하는 디자인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디자이너들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관련된 영역의 모든 사람들이 브랜드의 지향점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함께 그 목적에 부합하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갈 때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팀 워크를 기반의 디자인입니다.
결론적으로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홀로 커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객들이 우리 브랜드를 만날 때 어떤 경험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지를 브랜드를 다루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 그 목적에 맞게 모두가 움직여야만 높은 확률로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된다고 합니다. 경험은 모든 개인이 각각 놓인 상황과 경험하는 순간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일정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보다 긍정적인 경험의 순간을 잘 이끌어 내기 위해서 브랜드가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다음 회 칼럼에서는 그 방법과, 방법을 영리하게 이용한 브랜드 사례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