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의 과거인가요?
살던 곳보다 8시간 느린 곳에 오면 생의 시간도 8시간 늘어나는 걸까?
시차 적응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새벽 한 시에 잠깐 깼다가 새벽 다섯 시, 다시 잠이 들지 못하고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한 시에 눈을 떴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여덟 시간을 되감아 와 있는 이곳. 시간이란 뭘까. 한 해 한 해 넘어가는 것,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낮을 쫓아 달려서 시간을 거스른 우리는 지금 어느 시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이르게 시작한 오전. 어제 오후의 여운을 느끼며 여유를 부렸다. 놀라웠던 성당과의 첫 만남, 그리고 황홀했던 내부. 내부 관람이 끝나고 성당 맞은편 커다란 연못을 사이에 둔 공원 놀이터에서 시간을 한참 보냈다. 그네와 미끄럼, 시소, 작은 암벽 코스. 규모는 작았지만 있을 건 다 있어서 세계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세모난 꼭대기에 서서 브이를 하는 아들 뒤로 스페인의 랜드마크가 있다는 게 현실과 비현실 그 사이 즈음에 머무르는 기분이라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굴색이 다르고 말이 달라도 놀잇감과 모래로 쉽게 섞이는 아이들을 보며, 말이 안 통하니 언어가 아닌 소리와 손짓으로 놀이를 이끄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말랑말랑 태어난 우리는 크면서 점점 굳어지는구나. 너무 딱딱해지지 않으려면 그냥 뛰어들어야 되는구나.
화장실을 가려면 돈을 내야 된다는 것에 아들은 질겁했다. 참을 수 있으니까 숙소로 가자던 녀석. 사실 나도 문은 열린 채 어정쩡하게 금액만 써져 있는 기계 앞에 망설인 것이 사실이었다. 말로만 듣던 화장실 요금 기계와의 첫 대면. 숙소가 근처에 있어 다행이었지.
급한 볼 일을 해결하고 츄러스와 초코라테를 먹어보겠다고 나선 지하철 역. 지하철 표를 끊는 기계 앞에 다시금 낯을 가렸다. 미리 예습했던 표 대신 다른 것들이 숫자와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현지인에게 물어보자니 물어본다 해도 답을 제대로 알아들을지 의문이었다. 결국 그를 불렀다. 안녕 GPT야. 우리 여기까지 갈 건데 지하철 표 뭘로 사야 할까?
처음이 어려웠지 무사히 원하던 곳에 다다랐다.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야 된다는 것도 얼핏 어디서 본 것 같았다. 눈치코치 동원하여 환승도 무사히 마쳤다. 원래 가려던 츄러스 전문점은 줄이 길어 진작에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보려는데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들의 말에 선택이 조급해진다. 바로 앞에 자리 여유가 있는 카페에 들렀다. 여전히 한국과 다른 주문 방식이 익숙지 않았지만, 그간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놀이터에서 기력을 소진하고 지하철을 타느라 남은 에너지를 다 쓴 건지 아들은 츄러스를 먹고 꾸벅, 꾸벅. Excuse me, 카운터의 직원은 나를 부르며 아이가 잠들었다고 말해주었다. 피곤했나 봐요, He was tired. 현지 뉴스가 나오는 저녁의 카페 안, 의자와 내게 살짝 기대어 앉은 아들, 그리고 현지인과의 작은 대화. 낯선 도시가 조금은 가깝고 편하게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따뜻한 과일차를 호록 호록 마시는 동안 몸도 조금씩 따뜻해졌다.
츄러스로 인해 계획에 없었지만 오게 된 고딕지구.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고딕지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멋들어진 양식의 건물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도시가 더욱 커 보였다. 우와 - 영화 한가운데 와있는 것 같아. 빨리 숙소로 가자는 아들 손을 잡고 여러 번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철로 오고 가는 길,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두 차례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노선도를 보며 서 있는데 요란한 소리가 들리길래 뒤돌아보니 어떤 아저씨가 걸어오면서 무어라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소리에 뒤돌아 본 것인데 그의 삿대질은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인가.
근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거니와 대처할 틈 없이 삿대질하며 지나간 이후에도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는 걸로 봐선 그냥 한국의 취한 아저씨와 별다를 것 없어 보였다. 편의점 아주머니도 식당의 주인도 미소 띤 얼굴로 친절히 대해주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보안요원은 어디서 왔냐 묻더니 한국어로 인사를 해주었는데. 그들을 떠올리며 불편한 마음을 씻어냈다. 어쨌거나 큰 해코지 없이 지나갔다는 게 중요하니까. 약간 불편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이번엔 동양인 아저씨가 갑자기 마주친 우리를 아주 반가워하며 중국어로 무어라 무어라 말했다. 처음엔 길을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We are Korean, 저흰 한국 사람이에요. 했는데도 계속 중국어로 이야기하신다. 15년 전에 배운 중국어를 떠올리며 말했다. 我是韩国人. 그러나 굴하지 않고 여전히 반가워하시며 아 韩国人! 하신다. 악수를 했던 것도 같다.
서로 언어가 통하진 않았지만 그와 헤어지고 돌아서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냥 그리움과 반가움이었구나. 같은 나라는 아닐지언정, 낯선 타국인들 틈에 만난 동양인. 우리를 보며 잠깐 그의 나라를 떠올렸던 걸까.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중국인도 참 많았는데, 환승하던 구간은 동양인이 드문 곳이었나 보다. 그리고 대부분은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할 테니.
그나저나 중국 사람처럼 보이나. 성당 근처 기념품 샵에서도 히잡을 두른 직원이 중국에서 왔냐 물었었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중국 사람 같은 거랑 한국 사람 같은 거랑 그걸 왜 생각하고 있지. 인종차별을 걱정하면서도 중국인 같아 보인다는 것에 묘한 기분을 느끼는 모습이 별로 좋지 않았다. 우리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칫 편견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었다. 동양과 서양, 동양 중에서도 한국과 중국, 일본. 근데 굳이 나누는 게 무슨 의미야. 모든 차별과 편견은 구별과 구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AM 11:00 즈음, 사장님은 '테디'라는 이름의 프렌치불독과 함께 숙소를 정리하러 오셨다. 초등학생 때 축구 유학으로 이곳에 처음 왔다는 분. 우리가 묵은 숙소의 직원이 아직 새로 구해지지 않아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관련 에이전시와 유럽 여러 곳에서 숙소를 운영하신다고.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참 다양하구나.
나중에 가족끼리 오시면 할인해 드릴게요,라는 말 뒤에 저희는 이렇게 가족이에요, 괜한 말을 덧붙였다. 이런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자잘한 후회와 다짐을 한다. 이제 구구절절 말하진 않는데 여전히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있다. 자연스럽게 대처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태도가 자꾸 타이밍을 더욱 어색하게 만들고. 언제쯤 익숙해질지. 그래도 다행인 건 능숙하게 답하는 순간이 이전보다 늘었다는 것이다.
감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는데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께 맛집을 추천받는 소리가 하얀 문 너머로 들렸다. 사장님 저도 꿀대구 맛집 알려주세요, 하고 나갔더니 선해 보이는 청년 둘이 서있었다. 제가 공유해 드릴게요, 하며. 방은 다르지만 새로운 투숙객이 온다는 것에 조금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이어 그들은 방으로 들어가고 우리 둘은 준비를 마치고 공용 거실로 나왔다. 커다란 지도를 펼쳐놓고 오늘은 어디로 가볼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지 못한 지출과 외식 몇 번에 계획했던 하루 가용 예산 범위를 이미 넘겨버렸다. 민박에 있는 동안은 요리도 어려우니 챙겨 온 라면과 햇반, 장조림 등으로 밥을 해결하고 점심은 비교적 저렴한 체인점에 가서 먹을 생각이었다.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금액은 수제버거집과 별 차이 없었다지. 아직은 낯선 식당보다 마음은 편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거실에서 루트를 다시 상기했다. 보조배터리가 없으니 최대한 검색할 일을 줄일 생각이었다.
"일단 우리 점심 먹어야 하니까 맥도날드 가자."
"좋아 맥도날드!"
그때였다.
쿵 --
누군가 문을 세게 발로 차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 놀래라!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근데 뭐지 이 소리는. 설마 문을 발로 찬 거야? 아님 뭘 던진 거야? 근데 왜? 시끄럽다는 건가? 공용 거실 왼쪽 청년들이 묵은 방에서 나온 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