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 미모사 나무 아래, 깨어진 조각들

알록달록 곡선으로 이어진 이야기

by 수빈

찝찝한 마음을 안고 문 밖을 나섰다. 옅은 비가 이국적인 건물과 도로를 계속해서 적시고 있었다. 한국에서 챙겨 온 우산과 개구리가 그려진 어린이 비옷, 혹시나 해서 챙긴 어른용 우비를 들고 나섰다. 오늘은 종일 비가 올 거라고 했으니. 하필 구엘 공원 가는 날 비가 오네. 그래도 비 오면 인파도 적고 나름의 운치가 있겠지.


사실 날씨보다 더 우중충한 것은 마음이었다. 공용 거실 옆 방에서 들려온 의문의 소리. 무언갈 던지거나 손 혹은 발로 내리치는 듯한 소리였다. 그 청년들이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에도 사람을 잘 못 본 건가. 그래, 아이 목소리는 톤이 높으니 잠시라도 시끄럽게 들릴 수 있지. 비행 이후 쉬었다 다시 나서야 하는데 소리 때문에 못 자서 더욱 예민해진 건가. 아니 그래도 말로 하면 되잖아. 다 큰 성인인데. '저희가 쉬어야 해서 그런데 조금만 소리 낮춰주시겠어요?' 라던지 말이다.


놀랐던 감정은 의문에서 확신과 분노로 빠르게 번졌다.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오늘 밤과 내일, 두 밤을 더 자고 가야 하는데. 거실을 사이에 두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공용 공간에서 소음은 당연히 주의해야 하지만 때때로 나를 포함한 어른들은 아이의 작은 소리조차 예민하게 느낀다. 그럴 땐 나 역시 바짝 긴장한 채로 자주 아이를 다그친다.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무리해서라도 우리만 있을 공간에 갔어야 했나. 또 별 생각이 다 든다.


새로운 풍경에 활짝 열렸던 감각들은 미해결 된 감정으로 몰려들었다. 걷는 동안, 버스를 타는 동안 온통 그 생각뿐. 같이 온 어른이 있었다면 툭 털어놓고 말았을까. 말로 뱉어지지 않은 감정은 머릿속에서 계속 불어났다. 가는 내내 붙잡고 있었다.


한동안 다녔던 명상 수업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뺨을 맞았다고 예를 들어보죠. 짝- 하는 찰나에 이미 모든 것은 끝났는데 우리는 계속 그것을 떠올리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걸 우리가 붙잡고 있는 거지요."


역시 멀었나 보다. 한국에서나 타국에서나 다루지 못해 불편한 감정을 어쩔 줄 몰라했다.




한 푼이라도, 아니 일 유로라도 아낀답시고 맥도날드 앱을 다시 깔고 언어와 지역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바꿨다. 쿠폰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는 키오스크 앞에서 바로 무너졌다. 한국에서 쿠폰을 사용해봤다면 언어가 달라도 대충 이해했을 텐데. 결국 쿠폰은 치우고 먹고 싶은 걸 각각 골랐다. 패스트푸드점인데 일반 식당과 큰 차이 없는 금액이다. 뭐 어쩌겠어.


자리를 잡으러 둘러보는데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꽉 차있다. 어느덧 여행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아들은 자기가 아래층으로 가서 자리가 있는지 보고 오겠단다. 따라 내려가보니 자리가 없었다. 살펴보다 4인 테이블에 앉은 일행 둘 옆에 앉아 먹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네모난 종이곽에 햄버거가 담겨 나왔다.


낯익은 로고와 풍경이 다시금 바짝 긴장된 마음을 살짝 녹여준다. 어디라도 풀어놓지 않으면 오늘 하루 영영 그 기분에 매몰될 것만 같아 아들에게 살짝 말했다.


"아까 그 소리 혹시 너도 들었어? 확실하진 않지만 왠지 우리 시끄럽다고 문을 쿵 - 하고 친 것 같아서 말야. 기분이 너무 안 좋았어."


"응? 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괜히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녀석의 답을 들으니 별소리 아닌데 나야말로 크게 반응한 건가 싶다.




바로 근처에 까사 바트요가 있었다. 마치 환상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건물. 직각의 건물들 사이 알록달록한 곡선의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놀라움과 감탄에 붙잡고 있던 감정을 잠시 놓았다. 건물을 배경으로 아들 먼저 한 컷 찍고, 한 컷 찍어달라고 했다. 녀석, 그 사이 사진 실력이 늘었다. 덕분에 나도 여행지에서의 사진을 한 컷 남겼다.


S가 건네준 사진 중 하나의 배경이 까사 밀라였다. 보내준 사진을 들여다보며 어디서 찍었을지 요리조리 살펴보다 길을 건넜다. 초록 우비를 입은 아들이 선 배경과 S의 사진 속 배경이 겹쳐지던 순간. 십 년 전 친구의 앳된 얼굴이 겹쳐진다. 그녀는 함께 오지 않았지만, 멀리서 나를 이끌어 준다. 한국에서나 스페인에서나.


건물을 안 보고 갔으면 정말 아쉬울 뻔했다. 아니, 아예 몰랐다면 아쉬움도 없는 걸까. 생각의 가지를 뻗다가 기묘한 모양의 난간을 보며 말했다. "저기 봐, 난간 진짜 신기하게 생겼어. 뭐 같은 지 한번 봐봐." 조금이라도 더 담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나와 달리 녀석은 끝말잇기를 하잔다. 풍경에 집중하고 싶은데. 걷는 동안 눈은 사방으로, 머리 한쪽은 다음 단어를 떠올리느라 바쁘다.




굽이굽이 올라가는 버스. 언덕 중턱 즈음 정류장 이름을 보고 내렸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휴대폰을 뒤져 캡처해 둔 입장권을 찾는데, 가이드와 함께인 한국인 무리가 우리 앞을 지나쳐 갔다. 다들 어디 머무르다 이렇게 나오는 걸까. 우리도 그들을 지나 공원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에 보라색 옷을 입은 직원들이 표를 검수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표를 확인하는데 머리를 묶은 귀여운 인상의 현지 직원이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엄지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오! 감사합니다. 그라시아스 Gracias"


공원으로 들어서니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색, 모양의 나무와 식물들이 우릴 반겼다. 비에 젖어 색이 더욱 생생하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려는데 한 나무가 눈에 확 들어온다. 미모사 나무였다.


"저것 봐! 미모사 나무야. 우리 가까이 가보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책방을 열기 직전, 당장 내 일을 시작하려니 용기도 확신도 흐려졌다. 그날그날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알바 사이트를 살펴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꽃 자재 상가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바로 출근을 시작했다. 6개월 가까이 일했던 곳. 각종 조화 상품과 소품들이 많아서 다니는 내내 이름을 외웠다. 자주 본 것들은 어느덧 익혀졌다. 꽃이 한 가지라도 형태와 이름은 제각각이었다. 미모사 가지, 미모사 부쉬, 미모사 줄기 등등.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에 많은 것을 배웠다. 조화뿐 아니라 소품도 많았는데 얇은 유리로 된 것은 참 쉽게 깨어졌다. 금 간 유리볼을 깨진 유리 더미에 넣으면서 나의 삶도 새롭게 깨어나길 바랐었지. 깨어지고 깨어지면 알을 깨고 새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꿈과 너무 멀어진단 생각에 슬퍼지려 할 때면 지금은 내 인생의 비하인드를 걷는 것이라 되새겼다. 이제는 모두 그리운 기억이다.


크리스마스 소품을 보다가, 창고에 켜켜이 쌓인 조화 숲을 지나다가 짧은 소설을 떠올리곤 했다. 이전에 글로 수상한 이력을 듣고 "우리 애가 그거 썼다 아이가." 정말 조카라도 되는 듯 자랑해 주셨던 사장님과 먼 꿈을 응원해 주던 엄마 뻘의 실장님과 팀장님, 그리고 시니컬해 보이면서도 정이 참 많았던 동료 언니까지. 미모사 나무 아래 그들이 모두 스쳐갔다. 진짜 같아요. 예쁘다, 하고 새로 나온 가지를 만지던 때, 이렇게 미모사 아래 서있을 순간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실제 같아서 더 예뻤던 노란 꽃은 실제로도 참 예뻤고, 바라보던 눈동자도 노랑으로 가득 물들었다.


몸이 고되었지만 큰 스트레스는 없던 일. 퇴근과 동시에 끝났던 일. 농장 옆이라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것도 좋았다. 열심히 하는 만큼 급여도 조금씩 올려주셨다. 더 오래 일하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할 때쯤 운명은 계속 나를 떠밀었다. 마치 여기 더 머무르면 안 된다고 말하듯.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큰일이 여럿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한 번도 크게 아픈 적 없던 아이가 오한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처음으로 입원을 했고 의사 선생님은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는 지나 봐야 안다고 하셨다. 모두 많이 배려해 주셨지만 한 명의 손이 큰 곳에서 더 이상 빠질 수가 없었다.


병실 한 켠에서 사장님과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일 더 못할 같아요..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새 정이 많이 들었는지, 목소리만 들었는데 울컥 차오르는 것이 있어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돌로 만든 기둥과 터널을 지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바르셀로나 시내가 훤히 보였다. 와 - 하고 풍경을 살피며 걸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보였다. 우산을 들고 틈틈이 사진을 찍는데 한국 학생들 같은 친구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익스큐즈 미, 둘이 왔나요? 딱 봐도 한국 사람 같아서 한국에서 오셨어요? 물으니 영어로만 답한다. 알고 보니 중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었다. 수수하고 웃음이 많던 그녀들, 서로를 찍어주고 각자의 길로 향했다. 지난 여행 장면들이 스쳤다. 한국인인 나도 구별 못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더욱 구별 못하겠구나. 그래, 나누는 게 무슨 의미야. 우리는 우리이면 되는 걸.




비가 와서 질퍽거리긴 했지만 다시금 가우디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던 공원이었다. 그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돌과 깨어진 조각들, 그들이 만들어낸 곡선의 공간.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 알록달록한 세계 속에 붙잡고 있던 의심과 분노는 저만치 두고 온 뒤였다.


네잎클로버가 있을까?


깨어진 조각들은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모여 색을 이루고, 각각의 색이 다시 어우러져 곡선으로 흐른다. 다른 일부였던 것들이 모여 모양이 되고 그림이 된다. 그것을 바라보고 선 두 사람. 여러 개로 깨어졌던 조각들이 모여 나를, 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끊어놓은 교통카드에 이용 횟수가 얼마 남지 않아 조금 더 걸었다. 홀린 듯 들어간 레고 매장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레고로 재현해 놓은 작품이 있었다. 노란 옷을 입은 직원들은 참 친절했고, 활력이 더욱 생긴 아들에게 크지 않은 금액 선에서 하나 골라보라고 했다. 동물 모양 숫자 블록이 담긴 노란 봉투를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공용 거실에는 최대한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방에도 간이 탁자와 의자가 있어 저녁거리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옆 방 청년들은 아직 복귀 전인 것 같았지만, 다시 불편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바르셀로나의 저녁을 더 즐기다 오려는지 소식이 없었고 우린 저녁을 다 먹고 씻은 후 각자의 침대에 올랐다. 무거워진 눈을 들고 수첩을 열어 오늘 있었던 일을 그리고 쓰던 중이었다. 그때,


쿵 -


오전에 들은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이번엔 바로 머리 위에서. 생각해 보니 있는 동안 종종 큰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우리가 제일 아래층이었고, 위로도 사는 사람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렇다면.. 오전의 소리 역시 오해일 수 있겠구나. 느낌표가 하나 켜졌다. 출처가 불분명한 소리 하나로 얼마나 오랜 시간 불편한 감정을 붙잡고 있었던가. 직접 보고 듣기 전에 100%란 없겠지만 오해했다는 것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도 이른 새벽에 깼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니 옆 방에서도 한 사람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에서 먹을거리를 꺼내러 가는 길에 한국에서 가져온 미니 초코바를 두 개 챙겼다. 그가 거실로 올 때 살짝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거 별 거 아니지만 두 분 드세요. 오늘 밸런타인데이잖아요."


"아, 감사합니다. 아차, 아침 드세요? 저희 어제 하몽 좀 사 왔는데 드셔 보실래요?"


작은 초콜릿 두 개를 주고 하몽과 바게트를 받았다. 하몽은 한국에서 봐도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었는데, 먹어보니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다 먹고 준비를 할 때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똑똑 - 저기.. 멜론 드시겠어요?


선한 청년들은 밥을 다 먹고 후식으로 먹으려던 멜론을 우리에게도 건넸다. 달콤하게 뭉개지는 과육을 입안 가득 담으며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오해를 마저 풀었다. 몰래 한 오해였지만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들도 다음엔 포르투갈로 간댔는데 다시 마주친 일은 없었다. 덕분에 우리의 다음날 일정도 하나 추가되었었지. 언제 다시 보게 될 일이 있으려나. 말투로 봐선 윗 지방 청년들 같았다. 너무 잠깐이라 서로 얼굴도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날의 고마움을 다시 떠올려본다.


고마웠어요. 잘 지내요. Gracias 그라시아스, Adios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