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바람과 빛, 12각별에서 온 그대
'여기가 맞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종이 지도는 방향과 건물을 아는 게 아닌 이상 야외에서 쓸 수 없었다. 자칭 아날로그 인간은 고집을 꺾고 구글맵을 켰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는 묵고 있는 숙소에서 10분 정도 거리. 골목 몇 개를 지나고 한국보다 조금 작은 신호등, 양 옆의 굵은 흰 줄로만 표시된 횡단보도를 지나 두리번거렸다. 한 번만 더 돌면 되는데. 어디있지. 그러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을 때 헙-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호들갑 떨며 아들을 불렀다.
"저기 봐! 사그라다 파밀리아 저기 있다!"
흩날리는 빗방울 아래 여행객 몇과 현지 사람들은 출입문 앞에서 각자 뜻 모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 왔다는 걸 순간마다 깨닫는다. 택시 승강장은 어렵지 않게 찾았지만, 어떤 차를 타면 될지 어디서 먼저 타는 지 알 수 없었다. 마음 속에 익스큐즈미와 빼르돈을 장착하고 두리번거리던 그때 승강장 앞에 먼저 선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저기 혹시 한국분이세요 ..?"
어린 아이를 안은 엄마와 아빠, 세 가족은 알고보니 며칠 더 일찍 온 한국 여행객이었다. 택시 타는 법과 함께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 태풍이 온다는 소식도 전해 듣고. 아들과 둘이 왔다고 하니 용기를 칭찬해 주시며 현지 친구가 추천해준 맛집 몇 군데를 알려 주셨다. 같은 민족이란 이유로 맛집을 나누는 정에 대하여.
한국어로 다른 어른에게 작은 걱정을 털어놓고 나니 한결 편안해진 마음이다. 먼 타지에서도 고국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택시 앞으로 갔다.
현지 기사님은 커다란 캐리어를 번쩍 들어 트렁크에 실었다. 영화에서 본 듯한 빈티지한 택시. 주소가 출력된 A4용지를 내밀자, 기사님은 실내등을 켜고 주소를 훑은 뒤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주시며 출발했다.
라디오를 통해 아주 빠른 템포로 흘러나오는 말. 그리고 밤의 어둠 사이 큰 간판과 거리를 훑으며 숙소로 가는 길. 놀라움에 젖어 있다가 번뜩 다시 걱정이 된다. 기사님 머리 위에 전자로 된 숫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계기판일까. 카드 안되면 어떡하지, 바가지 씌우는 거 아냐? 이런저런 걱정과 기대가 뒤섞였다.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조급해진다. 괜찮아, 카드 있으니까. 가로등 불빛을 조명 삼아 회화책을 뒤적거렸다. 와중에 스페인어로 묻고 싶었다. 잠깐 정차했을 때 물었다.
"¿Aceptan tarjeta de crédito?"
(카드 결제 되나요?)
이미 그도 내가 책을 본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던지 잠깐 등을 딸깍, 켰다. 더듬더듬 건넨 물음에
"Si !" (네!)
하고 대답 후 다시 출발했다. 탑승 수속 이후 두 번째 현지인과의 대화에 만족하며 다시 창 밖을 보았다. 혹여 더 돌아가려나 안보는 척 내비게이션을 살폈다. 한참을 가다 속도를 줄이는 듯 하더니 건물이 가득한 골목 사이 어느 건물 앞에서 멈췄다. 무어라 영어로 말했는데 대충 제스쳐와 함께 추측하면 이 근방일 거라는 말이었다. 한인 민박 호스트와는 메신저로 소통하고 있으니 위치를 알리면 데리러 올 것이었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데다 밤이라 만약 둘이서 찾아야 했다면 꽤 헤맬 뻔 했다.
잠시 뒤 짧은 머리의 숙소 사장님이 인사를 건네며 오셨고 드디어 숙소로 들어왔다. 방이 세 개 정도 있었는데 아직 예약이 없고 비수기라 우리만 있을 수도 있다고. 열쇠 작동법까지 알려주신 후 떠나셨고, 넓은 숙소에 우리만 덜렁 남았다. 둘 다 겁이 좀 있는 편이지만, 내가 무서워하면 아들은 더 겁낼 것이므로 태연한 척 했다. 불을 다 켜고나니 크게 무섭진 않았다. 그제서야 배고픔이 몰려온다. 챙겨온 사리곰탕면 두 개를 꺼내 먹었다.
정리하고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아들도 마찬가지. 분명 깊은 밤인데 둘 다 말똥말똥 눈 뜬 채로 마주보고 누웠다. 아직도 한 방에서 같이 자는 우리. 1인 침대가 두 개라 처음으로 각각 누워 본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침실 등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워 지금의 감정을 나눴다. 신기하지. 우리 진짜 스페인에 왔어. 안 졸려? 내일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갈 거야. 엄마 이불 진짜 포근해. 이건 무슨 소리야.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고 깨어보니 여전히 어둡다. 한 네시 즈음. 다시 잠 들 수 없었다. 뭐 절에서도 새벽 4시에 일과를 시작하니까. 한국은 지금쯤 한낮이겠네. 가는 길이나 더 살펴야지, 하는데 아들도 덩달아 부스스 눈을 떴다.
일어난 김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어플 속 오디오 가이드를 함께 들었다. 보조배터리도 없고 챙겨온 이어폰도 하나 뿐이라 미리 들어놓고 가려고.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 가우디의 서거 100주년인 올해. 그가 성당 설계 제안을 받은 것도 내 나이 즈음이었다. 오디오를 들으며 백 년 전 고민에 빠졌을 그를 떠올린다. 이어 외부 설명 중 성당 꼭대기의 12각별이 소개되었다. 숫자와 도형을 비롯한 수학 전체를 좋아하는 아이가 관심가질만 한 부분이었다. 역시나 옆에서 소리친다.
"뭐어, 12각별이라고?"
12각별 이후 급격히 관심이 사그라든 녀석에게 더 자라고 채근하며 뒹굴거리다 여섯 시 쯤 거실로 나왔다. 즉석밥을 데우고 캔 장조림을 꺼내 김자반을 살살 뿌려 먹었다. 아침으로 밥을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날이 밝아질 때까지 안에서 어제 일과를 적고 그리다 평소보다 아주 이르게 하루를 시작했다. 성당 입장 예약은 오후 3시.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었다. 외지인을 내보내려는 듯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숙소 근처 평점이 높은 카페에 들렀다. 바람 때문에 문을 막아놓은 직원은 우리를 보고선 박스를 치우고 문을 열어준다. 한국과 유럽은 주문 문화가 다르다고 했는데. 약간 긴장한 상태로 입장. 여러 블로그와 SNS에서 배운대로 먼저 자리에 앉아 기다리다가 안내에 따라 핫케익과 계란, 소시지가 있는 메뉴와 오렌지 주스를 하나 시켰다. 끝에 'Por favor. (부탁합니다)' 를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짧은 모국어를 들은 사장님은 살짝 웃어주었다.
바람 때문인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여럿이 선 직원들 사이 손님은 우리 뿐. 진짜 오렌지를 착즙한 주스는 아주 상콤달콤. 바람이 휘몰아치는 밖과 다르게 안은 평화롭고 하루의 시작도 순조로웠다.
입장 시간까지는 제법 남았지만 그 전에 외관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사진과 그림으로만 보던 곳. 구글맵의 파란 점과 빛을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저기 봐! 사그라다 파밀리아 저기 있다!"
드디어 등장한 성당.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을만큼 높은 건축물이 골목 사이로 나타났을 때 둘이서 함께 탄성을 질렀다. 놀라움도 잠시 골목 사이로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자꾸만 밀어내려는 바람을 뚫고 가까이, 더욱 가까이 갔다.
원작을 읽고 공연을 보거나 책에 나온 장소로 가보는 일. 책 속에 있던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는 건 언제나 벅차다. 이 벅참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 행복했다. 혼자 왔으면 어쩔 뻔 했어. 이어 하나의 퀘스트를 수행하러 뒤쪽 공원으로 향했다.
여행 출발 일주일 전, 서울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20년지기 S의 전화. 그주에 있을 A의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는 곧 떠날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S는 대학시절 유럽 곳곳을 여행한 경험이 있었다. 몇 가지 팁과 계획을 공유하다 수화기 너머에서 흥미로운 퀘스트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녀가 사진을 찍은 곳과 같은 배경,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보는 것. 찍은 후에 함께 붙여놓으니 재밌더라며. 전화를 끊은 뒤 몇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적은 예산에 가이드 투어는 진작 포기했는데 그녀의 사진은 무형의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앞서 들은 예고처럼 태풍이 불진 않았지만 고요한 사진 속 얼마나 바람이 몰아쳤는지 모른다. 뒷편 공원 바닥은 모두 흙이라 모래 바람을 가득 맞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상한 것은 메마른 풍경이었는데 초록 잎을 무성히 단 나무가 제법 있었다. 그러나 쨍한 날씨와 대비되는 모래 폭풍 때문에 아직 겨울이 끝난 것은 아님을, 지금이 왜 비수기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같이 사진을 안남기면 아쉬울 것 같아 성당을 배경으로 팔을 쭈욱 뻗었다. 그때 옆에서 한국말이 살짝 들려왔다.
"...우리가 찍어드릴까?"
썬글라스를 낀 늘씬한 남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 ..! 네 감사합니다."
아들과 가족여행을 온 멋진 부부 덕에 사진을 남기고 다시 돌아 두 분을 찍어드렸다.
"몇 살이야?"
하고 묻자 아들은 망설였다. 도착하기 전 공항에서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나이로는 8살이지만 외국에서 누가 물으면 6살이라고 해야돼. 거기선 만 나이를 쓰거든.’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에겐 어떻게 나이를 설명할지 고민중이란 걸 눈치 채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분들도 아들과 왔는데 따라 나오진 않았다며 형아와 달리 엄마를 따라나온 아들을 칭찬해 주셨다. 첫 날, 둘째 날 모두 한국 분들의 도움을 조금씩 받으며 추억을 방울방울 만들어 갔다.
입장하기 전 점심을 먹어야 했다. 오전에 들른 브런치 카페의 경험 덕에 조금 더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안내해 준 자리의 테이블 위엔 와인잔 두 개가 얹어져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 잔이 어떤 일을 가져올지 몰랐다. 그저 맥주를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엄마는 맥주 스타일이 아냐." 라는 그의 완곡한 절주 제안을 수락했다. 감바스 알 하이요와 치킨 스틱, 그리고 물 한 병을 주문했고 금방 나온 물을 와인잔에 각각 따랐다. 우리 옆 테이블엔 먼저 앉은 중년의 백인 부부가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은 때때로 틀리지 않아서 더 무섭다. 한창 맛있게 먹던 그때 그의 손이 툭 - 잔을 스쳤다. 물이 쏟아져 옆의 부인에게 튀는 동시에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려던 그때 반사적으로 나간 오른손으로 잔을 잡았다. 휴. 우선 물을 닦는 그녀에게 "Really sorry.." 를 연발했다. 그들은 괜찮다고 하고 식사를 이어가고, 아들에게 눈빛을 찌릿 한번 보낸 뒤 잔을 둘 다 내 앞에 두었다. 어느정도 다 먹었을 때 쯤 오른쪽 테이블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다시한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나 타국에서나 행여 내 아이가 밉보일까, 아이를 챙기지 않는 무개념 엄마로 보일까봐. 한국 대표로 온 것도 아닌데 한국인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남길까 별의 별 걱정을 다 하며 사과의 사과를 덧붙이는 내게 말했다.
"It's just water. That's ok."
(그저 물인걸. 괜찮아 정말.)
부드럽고 단호한 답이 나를 감쌌다. 그래 그저 물인데. 장난을 치다 그런 게 아니라 손을 뻗다 부딪힌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저 물인 걸. 한국에서나 타국에서나 아이가 혹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더욱 전전긍긍한다. 물론 피해를 주지 않도록 훈육하는 것이 양육자의 몫이지만 때론 스스로도 과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몇 년 전이었다. 퇴사하기 전에 만난 신입 직원과 점심을 먹으러 근처 분식집에 갔던 날. 떡볶이를 앞에 두고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머로 뒷 자리 여성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니 걔 부모가 사실 이혼했는데, 그래서 애가 버릇이 없어. 양쪽에서 애한테 미안하다고 이것저것 다 사주고 들어주고 하니까 ..."
순간 맛을 잃었고 그저 묵묵히 씹었다. 차분해졌다. 감사하게도 나의 주위에는 응원과 도움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은 뾰족하고 진해서 주머니 속에 오래 남아 잊을만할 때 쯤 나를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한 켠에 남아 그 위에 무수히 쌓인 '괜찮아'를 뚫고 올라온다. 바다 건너까지 따라올 줄이야.
우리 테이블을 지나 나가던 중 남편 분이 알콜 탓인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웃으며 덧붙였다. 식사 잘 하고 가라고 걱정 말란 말과 함께,
"You're today's hero! haha-"
(네가 오늘의 영웅이야! 하하 -)
같이 웃다가 손을 휘두르며 답했다.
"Speed~"
사실 모든 엄마들은 슈퍼 히어로야, 라는 말을 속으로 덧붙였다. 컵도 마음도 어느 것 하나 깨진 것 없이 식당을 나섰다.
"뭐랄까. 진짜 홀리한 기분이더라고. 꼭 가봐"
S의 말을 떠올리며 들어선 성당 안. 앞서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은 것 처럼 나무를 닮은 거대한 기둥이 서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오후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색색의 빛. 각각 다른 색이지만 부드럽고 벅차게 들어오는 빛. 만약 세상이 처음 시작될 때 빛이 쏟아졌다면, 세상을 구원할, 혹은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할 때 빛이 나왔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둘이서 한참 빛을 바라보았다. 사진과 영상으로 모두 담아갈 수 없어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