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정말 바르셀로나인가요
"우리 비행기는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현지 시각은 ..."
지지않는 하늘을 건너 내려온 곳은 저녁이었다.
14시간이 넘는 긴 오후를 보내고
드디어 도착한 바르셀로나.
정말 왔다는 생각에 엉덩이의 아픔도 잊혀졌다.
자 이제 각종 블로그에서 본 대로
표지판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걸어가면서 보는 공항의 직원들도 모두 외국인이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입국수속 줄에는 같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대부분. 두려움보다 설레는 두근거림이 더 컸다. 누가 안내를 어긴 건지, 가이드에게 주의를 듣는 어르신들을 뒤로 하고 직원이 열어준 다른 줄로 향했다.
먼저 선 탑승객 뒤에 줄을 섰다. 몸은 서있지만 눈은 저만치 나가서 차례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관찰중이다. 기내에서 틈틈이 봤던 스페인어 표현과 영어 표현을 함께 떠올린다.
'먼저 올라! 인사하고,
여기 왜 왔냐고 하면?
> For vacation with my son.
숙소를 물으면?
> 프린트 해온 숙소 주소를 보여 줘야지.'
긴장 반 설렘 반 우리 차례가 왔다.
"올라..!"
"Hola!"
인사는 성공. 제복이 잘 어울리는 흑인 직원은 여권을 한참 보더니 내게 무어라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갑자기 긴장한 채로 멈칫하자 그는 내게 다시 물었다.
“너 혹시..”
지하에서 올라 도착한 인천 공항은 화면으로 보던 만큼 정말 컸다. 행여 헤매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미리 동선을 알아두었다. 두리번거리며 방향을 찾던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태워드릴까요?"
"..! 타도 되는 거예요?"
따라가보니 작은 전동차가 서있었다. 우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짐과 몸을 실었다. 티내지 않은 긴장이 슬쩍 풀리며 시작부터 받은 도움에 애국심이 차오른다.
"같이 오니까 진짜 좋다.
덕분에 엄마도 같이 편하게 가네."
혼자 가려고 했던 결심이 미안해서,
혹여나 억지로 데려가는 거라 생각할까봐 순간마다 고맙다고 말한다.
"엄마 내가 들어줄까?", "내가 할 수 있어!"
작은 몸으로 종종 나의 보호자가 되려 하는 녀석. 대견하면서도 행여 그 생각과 말이 내가 만든 결핍에서 기인한 것일까봐 자주 뒤돌아 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물음들이 아이를 더 빠르게 키운 건 아닌지.
한껏 올라간 어깨에 부응하기 위해
"응. 들어줘어." 하고 괜히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지고 갈 모든 짐까지도 네가 들려 할까봐 힘주어 말한다.
"아냐. 엄마가 할 수 있어. 엄마 엄청 힘 쎄!"
밖으로 보내는 말은 너의 귀를 돌아 나의 귀에도 들어온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와서 켜켜이 쌓이는 중이다. 힘 센 엄마가 될 수 있는 것도 네 덕분이야.
언제나 말해줄게.
우리 처음으로 해외여행 가요! 라고 말하듯 이동하는 내내 전동차에선 후진할 때 나올 법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금세 엘리베이터 앞이다. 감사와 감상에 젖어 차에서 내리고 보니 아들은 가방을 앞으로 꼬옥 안고 있었다. 설마하고 물어보니 소매치기가 올까봐 그렇단다. 아들아, 우리 아직 한국이야. 언제나 나보다도 조심성이 투철하달까. 망원경과 노트, 색연필이 든 가방을 행여 누가 훔쳐갈까 걱정하는 널 보며 소중한 것과 탐낼만 한 것의 차이를 생각했다.
그래,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것과 소중한 것은 또 다른 것이지.
와중에 어느 도둑이 몰래 아이의 가방을 가져 갔다가 다시 되돌려주려 여행한다는 내용의 소설 한 편을 상상한다. 언제나 MBTI의 N극으로 향해있다.
여유를 부리다 게이트를 빠듯하게 통과했는데 비행기가 지연되어 무사히 탑승했다. 우리 옆 한 자리엔 외국인 여학생이 앉았고,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 화장실에 가야할 순간이 빨리 오지 않길 바랬다. 그제서야 통로 좌석이 더 빨리 나간 이유를 알았다.
다만 창밖 풍경을 오로지 누릴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어느덧 끝없이 펼쳐진 구름. 지평선과 수평선이 있다면 이건 운평선이라 불러야 할까. 드래곤볼의 근두운에 관해 아들과 이야기할 때쯤 첫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같이 와서 좋은 점 또 하나. 둘 다 시켜서 나눠먹을 수 있다는 것. 비벼진 비빔밥이 생각보다 매콤해서 결국 대부분은 내 몫이었다만.
비몽사몽으로 일어난 옆 친구가 탁자 여는 걸 헤매길래 작은 오지랖을 부리고 식사를 마쳤다. 정리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에취!"
책 읽다 재채기를 크게 했는데 옆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한발 늦게 이해하고 보니 그 말은
"God bless you!" 였다. 참 귀여운 친구.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해 수화물을 찾을 때 보니 한국인 친구를 포함해 국적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다. 한국에 왔던 유학생이었을까. 그녀가 빌어준 신의 가호와 함께 먼 시간을 날아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너 혹시..”
인사만 했을 뿐인데 입국 심사 데스크에 앉은 그는 스페인어로 무어라 긴 말을 했다. 끝에 에스파뇰?만 알아듣고 순간 여행회화책의 문장이 번뜩 떠올라 대답했다.
"No, soy coreana..!"
(아니요.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분명 가까이 다가가 한국 사람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는데 그는 도장을 찍고 또다시 스페인어로 질문을 던졌다. 이게 바로 입국 심사란 건가. '바로 전에 들어간 사람은 더 묻지 않았는데. 괜히 원어로 인사해가지고는 ...' 짧은 찰나에 긴 후회를 하는데 문득 어디서 들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Umm, I heared that. but I don't remember this..." (음..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Cómo estás?' is 'How are you?'"
(¿Cómo estás?는 어떻게 지내? 란 뜻이야.)
" Ah~ gracias! "(아~ 고마워!)
그저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였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려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아디오스. 즐거운 여행이 되라는 말도 함께. 저녁에 도착해서 한산했던 공항, 그의 다정한 말과 미소 덕에 스페인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다. 경직된 마음도 살짝 풀어진다. 앞으로의 여행도 무리 없이 해낼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역시나 쉬이 가지 않는다. 7시가 넘어 도착한 바르셀로나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구글맵에선 지연!이란 빨간 문구와 함께 예상 이동 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으로 안내되었다. 오마이갓. 한인민박에서 미리 안내해준 차량 픽업 비용은 50-60유로 정도. 하루에 50유로 정도 쓸 계획이었는데 말이다. 대중 교통으로 갈게요, 그래 까짓거 뭐 어렵겠나 구글맵도 있으니까. 하고 호기롭게 왔는데. 뒤늦게 우버 앱을 설치하려 해 보았지만 esim만 설치해서 그런가 인증번호는 오질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왼쪽엔 캐리어, 오른쪽엔 아이 손을 잡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한번 더 실감이 났다. 우리가 정말 다른 나라에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