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 파파고 잘 되어 있는데 굳이?
신기하게도 여행을 결정한 이후
지지부진하던 일도 착착 정리되었다.
여행에 대한 마음과 생각의 크기가 이만큼이었구나.
떠나기 전 끝내놓아야 할 게 제법 있었고,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결정과 실행이 간결하고 빨라졌다.
"시작은 반이 아니야. 거의 90프로야." 라 했던 S의 말이 떠오른다.
큰 덩어리부터 해결하고 차츰 작은 덩어리를 채웠다. 속으로 덜덜 떨며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비행기를 예매하고나니 정말 돌이킬 수 없다는 게 실감난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맞아서인지, 원래 물가가 더 비싼 곳이라 그런지 숙박비가 생각보다 더 비쌌다. 호텔은 무슨.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숙소 금액도 *4박을 하니 더욱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예산이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무조건 가성비.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보다 한인 민박을 알게 됐다. 아마 처음엔 더 무서울 텐데 한인 민박이라면 마음도 함께 잠시 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리스본은 비교적 엄두를 내볼 만한 숙소 금액이라 에어비앤비를 둘러보는데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리스본의 300년된 집'.
소개글만 보는 데도 상상이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진 역시 멋스럽다.
현지 호스트를 만나면 제일 먼저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까, 하며 4박을 예약했다. 짐을 들고 낑낑거리는 데에 짧은 시간을 다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 홀가분하게 다니기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숙소 한 곳, 리스본에서 숙소 한 곳. 리스본 숙소엔 집기도 다 갖춰져 있으니 같이 요리해서 밥 먹어야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바깥에서 성당 건물만 보고 오려고요, 했더니 그 말을 들은 학원 원장님이 꼭 입장권을 예매해서 안에도 둘러보고 오란다. 그때 못가본게 후회돼서 꼭 한번 더 갈거라고 하시며.
그렇다. 12월의 끝자락에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한 것 역시 언제가 될지 모를 여행을 위한 초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온 지금, 조언을 따른 것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틈틈이 여행 준비를 하면서 릴스엔 내내 소매치기 관련 내용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안전한 곳이구나를 새삼 느끼며. 굳이 굳이 그 위험한 곳에 가야하나, 내 안의 검열자가 말을 걸었지만 뭐 어떡해.
이미 다 저질렀는 걸.
돌아갈 다리를 끊으면 결국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다.
J와 P를 오가는 사람. 촘촘하지 않아도 큰 일정은 생각해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아이와 함께 일정을 계획할 때 욕심은 모두 버린다. 하루에 한 곳. 그리고 주변 둘러보기. 가져갈 것 역시 필수품이 아니면 모두 제외.
가장 무서운 건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혹여 아이를 잃어버리게 될까봐. 여행 경비도 줄이는 마당에 스마트 워치는 엄두도 못내고 역시나 아날로그로 간다. 다이소에서 이름표와 목걸이를 함께 샀다. 연락 올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식탁 위에서 만든 미아 방지 목걸이.
'If my child is alone, plese contact me.'
단기간에 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나라 언어를 조금 익혀 가고 싶었다.
언어는 문화에 발을 들일 티켓이라지. 앱이 잘 되어 있지만 직접 말하고 듣는 건 또 다를테다.
화면보다 종이가 더 좋은 책방지기는 욕심을 버린 자리에 책을 넣었다.
햇반과 컵라면, 장조림 캔 옆 자리에 바르셀로나/포르투갈 가이드북 한 권 씩.
고심하여 고른 스페인어 여행회화 책 한 권,
(영어 메이트 Jinny는 나의 야심찬 준비물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구글 맵, 파파고 잘되어있는데 대체 왜 ...!')
이어 긴 비행 시간에 읽을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종이가방에 넣고
아이 몸 만한 캐리어 하나를 들었다.
아들의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가방엔
망원경과 계산기, A4용지와 필통 등이 담겼다.
어차피 여유로운 일정이라면 틈틈이 같이 그림 그리면 좋겠다, 해서 사둔 아들 몫의 작은 스프링노트와 색연필. 엄지 손가락 만한 연필깎이 하나.
내 몫으로는 A에게 선물 받은 손바닥 만한 무지 수첩.
상상한 장면은 분명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
풀이 웃자란 바닥 햇살 아래 걸터 앉아
나란히 그림 그리는 모습이었는데 말이지.
다시 기억을 톺아보는 지금
무지 수첩 위의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analogue keeper'
과연 어디까지 아날로그였고,
무엇을 지키고 돌아왔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