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 미생과 정말 같을까요?
초등학생(실제로 국민학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던 세대) 시절,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다룬 "TV 손자병법"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드라마 속 직장인의 삶이 내 눈에는 꽤나 흥미로운 소재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 그 배우들의 인생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살아가는 나를 접할 때, "TV 손자병법" 드라마가 기억나곤 한다.
내가 종합상사에 입사할 때 역시 "취업난", "실업률"은 언론지상에 늘 메인으로 등장하는 단어였다. 그런 역경(?)을 뚫고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20여 명이었다. 각 부서에 1~2명, 많게는 3명씩도 배치가 되었고 신입사원 합숙도 하고 계열사 공장 견학도 다니면서 서서히 비슷한 성향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법무팀에는 2명의 신입사원이 배정되었다.
팀 선배들은 나를 중고 신입이라고 부르곤 했고 그런 농담에도 나는 헤헤거리면서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세요! 선배님"하고 들러붙으면서 어떻게든 빨리 팀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전날 과음을 한 팀장님은 종종 "너 혼자 자취하느라 아침밥 안 먹지?"라며 나만 데리고 나가서 해장 라면도 사주곤 하셨다(하지만... 아침에 라면 먹는 거 안 좋아함).
반면 법무팀 신입 동기는 종교적인 이유로 음주를 할 수 없었고, 성격도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동기들과도 다소 거리감을 두었고 선배들에게 질문하는 것에 있어서도 엄청난 부담을 가져서 모르는 사항이 생기면 혼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와는 섞일 수가 없었다.
에피소드 1. Iran Sanctions.
미생들에게 내린 팀장님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그 당시 미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적 압박 제재를 매우 강화하였고 이로 인해 이란 수출품목이 많은 국내 기업과 은행들은 수출하고 받아야 할 상품대금 자체가 동결되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 회사도 수출대금 상당액이 이란 현지 또는 이란 국책은행 선에서 다 묶인 상태였다. 공부도 시킬 겸, 본인이 보고해야 할 보고서에 참고도 할 겸 팀장님은 나와 내 동기에게 "Iran Sanctions"에 대한 리포트를 함께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쌩...크션?? 생션? Sanction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고 뉴스에서나 볼 만한 상황들이 내가 돈 벌러 다니는 직장에서 상당히 중대한 이슈였기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거 저거 자료를 긁어모으고 영업팀에 가서 물어보기도 하면서 서로 파트를 나누어서 대충 초안을 작성해 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동기는 내게 말했다.
"우리 각자 따로따로 자료를 만들자."
동기는 섬세했고 꼼꼼하고 자료 분석도 잘했는데, 그걸 표현해 내고 외부로 요약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결국 자료를 각색해서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고 정리하는 건 나였고 그런 과정에서 본인이 비교를 당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그러자고 했다. 경쟁을 하고 싶었던 건지, 본인의 능력이 나로 하여금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간다.
에피소드 2. 치킨 목살이 불러온 파장
신입사원이 2명이나 들어온 법무팀은 조금 늦은 환영회식을 열었다. 입사하고 약 1달 정도가 지났던 시기였다.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는 조금 들떠서 "네네 팀장님, 네네 과장님, 네네 대리님." 하면서 네네치킨 사장처럼 네네거리고 맥주를 맛있게 마셨고, 술을 못 마시는 내 동기는 구석에 앉아있었다.
주문한 치킨이 나왔고, 팀장님은 "자~ 싹싹한 너는 이거 다리살 먹어라!" 하면서 나에게 치킨 닭다리를 뜯어 주셨고, 동기에게는 "야! 술도 안 마시는 너는 이거 목살이나 먹어라!" 하며 농담을 가장한 핀잔을 주더니 "농담이다. 농담! 너도 많이 먹어라!"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회식은 단촐하게 끝났고, 다음날 큰 파장이 일어났다.
아침에 출근하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고, 내 동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인사팀에 전화를 하여 자신의 아들이 팀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며 왜 나의 아들에겐 목살을 주고, 동기에겐 닭다리를 주었냐는 항의를 했다고 한다. 회사는 좀 발칵 뒤집힌 상태였고 팀장님은 상무님에게 불려 가서 많이 털렸던 것 같다.
그는 결국 다시 회사로 복귀했지만 1년 뒤, 또 다른 에피소드를 남기고 퇴사했다.
그 일로 인해 선배들은 나를 적응 잘하고 있으니 걱정 없는 친구, 내 동기는 따뜻한 관심을 주어야 하고 혹시 그에게 장난이라도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구분 지었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선배들의 케어로부터 멀어져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넌 잘하니까, 넌 걱정 없어 등의 '당연'이라는 테마로 나를 정의했다.
종합상사뿐만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도 동기는 존재하고 동기와의 긍정적 경쟁은 서로에게 큰 시너지를 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TV 손자병법에서도 승진 누락, 동료와의 경쟁, 회사 정치 등등 1980년대에도 지금과 똑같은 직장 내 이슈들로 스토리를 키워냈다. 그러면서 결국 삶은 아름답고 때론 잔인하지만 또 그 안에서 보람과 행복이 있다는 엔딩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내가 종합상사에서 겪었던 나의 동기는 건전한 경쟁도, 애틋한 동기애도 없는 그저 그런 기억뿐으로 존재한다. 2024년 지금의 회사는 더 치열하고, 생존 자체가 의문 투성인데 20대 후반 사회 초년생의 추억을 회상하며 현재를 견뎌낼 수 있는 동기애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던 종합상사의 신입사원 시절.
그래서 더 강하게 생존해야 하는가?라는 의문만 남겨주었던 동기사랑의 거짓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