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인 내가, 아줌마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줌마라는 존재에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조금씩 덜어지는 경험을 쓰고 싶었다. ‘브런치나 먹는 한가한 존재’에서 ‘브런치를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인 존재’로 이해되기까지. 내 경험과 생각의 변화를 쓰고 싶었다. 아줌마 친구를 사귀는 것의 고단함과 즐거움을 쓰고 싶었다.
이곳에 살기 전까지, 나는 내 친구들을 ‘내가 정말 좋아서 사귀어온 사람들’이라고 여겨왔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람들을 사귀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사람을 사귀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안정감. 친구가 있다는 안정감. 나는 그것을 원했다.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을 원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 해당 그룹의 구성원을 좋아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다수라는 권력집단에 속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그룹의 경계 밖으로 내쳐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생활 반경이 거의 비슷한 동네 사람들끼리라서, 더욱 그러했다. 아이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동네 놀이터에서, 마트에서 그룹의 구성원들과 무방비 상태로 마주쳤다. 어색하게 봐도 못 본 척, ‘쌩-’한 차가운 공기를 경험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이, 동네에서 무난하게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었다.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가 모두에게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 그룹이 원하는 방식을 강요했다. 나는 그렇게 내 삶에서 어떤 것을 내어놓으며, 그 그룹에서의 우정을 지키려 했었다.
우정이 가진 권력, 그룹이 가지고 있는 폭력,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을 경험했다. 나는 가해자이며 피해자다. 가장 평등할 것이라 예상한 ‘아줌마 친구들’ 관계에서 다양하고 세련된 차별을 하고 또 받았다.
나는 우정을 얻는 방법이 전략적이지 않기를 바람 한다. 친구라는 관계가 느슨하게 열려있기를 바람 한다. 그 결속이 너무 단단하여, 해당 관계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기를 바람 한다. 최소한 내가 배척될까 두려워 다른 사람을 뒷담화하고, 놀리고, 배제하지는 않기를 바람 한다.
마지막으로, 삶의 양식이 남들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람 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독서모임을 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 엄마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이것을 드러내도 ‘척’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날이 오길.
내가, 그리고 나의 글이,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