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 커피 한 잔 하실까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션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날따라, 누군가를 만나서 갑갑하게 차 있는 내 가슴속에 뜨거운 공기를 내보내고 싶었다.
- 네에, 우리집에 오세요
가벼운 승낙이다. 다행이다.
- 저어, 지금 걸어가면 15분쯤 후에 도착하는데... 바로 가도 될까요?
- 네 오세요~
션의 막내아들과 나의 아들이 어린이집 같은 반이어서, 인사를 하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션은 아들만 셋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션의 얼굴에는 아들 셋을 키우는 고단함이 묻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주 잘 웃는다. 살짝 하이톤의 목소리. 맑은 피부까지. ‘어떻게 아들 셋을 키우는데, 저렇게 해맑을 수가 있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생기가 부러웠다. 그녀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은근슬쩍 전화번호도 물어보고, 괜히 말도 걸어보곤 했다.
내가 션의 집에 도착하자, 션은 과일을 깎았다. 잠시, 책장을 살펴보았다. 초등학생인 첫째와 둘째의 책이 많았다. 책장 한 켠에는 아들 육아 관련 책이 주욱 꼽혀 있었는데,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라는 책을 보고 나는 파안대소했다. 역시나, 여자 엄마가 남자 아들을 키우는 것이, 아들 육아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는 아들 셋 엄마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당시 나는, 4세 아들 육아에 꽤나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고집부리기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다. 울면서 말로 떼쓰는 정도는 양반 축이였다. 나의 친애하는 아들들은 조금만 수가 틀려도 울며불며 둘이서 번갈아가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배를 깔고 누워서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거나,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등을 깔고 눕거나. 놀이터, 어린이집, 공동현관, 엘리베이터, 마트, 길가, 심지어 횡단보도에서도. 온 동네를 배로 등으로 닦아 내는 아들 등살에, 나는 육아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 흑... ”
나는 울었다. 한 번 터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내가 울자, 션도 울었다. 그렇게 아줌마 둘이서 한참을 그냥 그렇게 울었다. 내가 좀 진정되자, 션은 아들 육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키워보니, 그럴 때가 있더라.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애들이 많이 나아지니 맛난 거 잘 챙겨 먹고 힘내라’고 해 주었다. 그래야겠다... 밥이나 잘 챙겨 먹자...
“저도 우리 첫째 때문에 너무 힘들... 흑...”
아, 이번엔 션이 운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요... 동생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애가...흑... 원래 엄청 착했는... 흑”
션의 눈물을 보고, 나도 울었다. ‘아...’ 나도 뭐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나는 아이를 4세까지밖에 키워보지 못한지라,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주저주저하다가, 그냥 그녀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오전 내도록 둘이서 울었다. 가끔 울다가 또 웃다가.
나는 정말 잘 우는 편인데...여기, 나만큼 잘 우는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네. 그래요. 웁시다. 그냥 울기라도 합시다.
사람들. 겉으로는 잘 사는 거 같아도, 대문 열고 들어가서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한 걸까. 이 동네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삶의 무게가 있는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사람들과 잘 지내려 하고, 고단함을 티 내지 않고. 어른이라는 역할에 맞게. 엄마라는 역할에 맞게.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고 있음을,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에도, 우리는 만나면 참 자주 울었다. 버거킹에서 햄버거 먹다가도 울고. ‘오늘은 기분 내자’며 큰 맘먹고 방문한 비싼 뷔페에서도 울고. 동네 벤치에 앉아서도 울고. 뒷동산에 운동하러 가서도 울었다.
션은 내가 잠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머, 축하해요.’ 해 주었고, 일을 그만두었을 때도 ‘그래요, 잘했어요.’ 해 주었다. 나를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나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감정의 뒤끝이 없을까. 계산 속이 훤한 나는, 션의 그런 깔끔함이 참 부럽다.
나에게 션은 참 고마운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사람 잘 사귀는 그녀에게도 내가 그러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안 물어본다. 그냥, 이렇게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