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레알 월드, 차 떼고, 포 뗐다

가장 보통의 존재

by 레베카

“너나 나나, 여기서나 감독 소릴 듣고 대접받고 살지? 나가지? (한숨) 후우... 그냥 찌질한 동네 형... 흔한 남자 새끼일 뿐이야.”


드라마 ‘멜로가 체질’ 주인공, 범수의 대사다. 범수는 ‘방송가에서 성공 보증수표로 불리는 드라마 피디’라고, 멜로가 체질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설명되어있다. (http://tv.jtbc.joins.com/cast/PR10011072/4) 선망의 직업 방송국 PD도, 흔히들 개목걸이라고 불리는 ‘사원증’을 떼고 나면, 별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야 만다. 직업. 한 사람을 단박에 설명할 수 있는,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 흔한 남자새끼를 감독 소리 듣게 해 주는 그것.


저 대사를 듣는 순간, 훅 하고 스친 생각.

‘그럼 나는...? 그냥 찌질한 동네 언니... 흔한 아줌마일 뿐인가...’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직업. 전업주부

인정할 듯, 인정하기 싫은, 인정해야 하는 내 직업, 전업주부.


지금의 나에겐 범수의 ‘여기서나’가 어디일까. 내가 대접받고 사는 곳은 어디일까. 집...이다. 지금 타이핑을 할 수 있는 이 방, 여기다. 30평 남짓한 이 집, 이 공간의 ‘최고관리자’는 나다.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허전하지. 내가 내 집의 최고관리자라는 말이,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족적 ‘정신승리법’처럼 느껴진다. 나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자’고 다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전업주부라는 내 존재에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내 나이 42세, 내 삶의 연대기는 이렇다. 7년간 미취학 아동, 초등부터 대학까지 16년 학생, 1년 백수, 11년 직장인, 7년 아줌마.


‘아마도 계속 아줌마.... 죽을 때까지.. 아줌마...? 아니야, 뭔가 하지 않을까. 지난주 토요일이 제30회 공인중개사 시험일이었다는데. 아들 친구 엄마가 합격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나도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지, 나는 밥벌이를 준비하는 구체적인 실천에의 안을 고민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다. 나는 이렇게 뭔가 헤매듯, 하지만 부지런하지는 않아서 의지박약인 듯, 그렇게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3-4년 전 초보 아줌마 시절, 나는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굳이 내가 나 스스로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는 등의 과거 이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에둘러 말하면서, ‘내가 스스로 먹고 살 정도의 경제력을 유지했었다’는 것을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 더더더 전에는 부끄럽지만, 어느 회사를 다녔고 무엇을 전공했고 등의 정보를, 말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과거의 이력을 줄줄줄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내 자존감 로우 레벨(Low Level)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는 격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고 싶었다. 아줌마 이전의 나, ‘진짜 나’라고 여겨졌던 그때의 나를 알려주어야, 상대도 나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이러한 능력을 장착한 자이나, 지금 현재 육아로 인해서 잠시 그 능력치를 내려놓은 것일 뿐, 그러니 님은 나를 인정해 달라. 이런 나의 태도가 ‘재수없음’을 아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 ‘나도 한 때는...’이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메아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내게 직업은 곧 그 사람이었다. 자기 증명이었다. 직업이란, 곧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였다. 그 직업을 얻기까지 노력한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한 인정이었고, 현재 그 사람의 하루의 일과를 채우는 일상이며,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 여겼다.


나의 직업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당시 너무 괴롭게 회사를 다니던 남편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작년 1년 동안, 초등학교 ‘방과후강사’라는 직업을 한 적이 있다. 재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포기하려고 할 때 즈음, 한 군데 학교에 어렵사리 합격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술이 매우 부족했다. 인지 발달이 덜 된 저학년을 가르치는 것은, 나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 같았다. 당시, 취업의 기쁨과 성취보다는 ‘이렇게까지 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자주 들었었다. 그 스트레스는 고이고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던져졌다. 몇 달의 고민 끝에, 나는 이 일을 그만두었다.


몇 번의 경험이 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해도, 다른 곳을 쳐다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의 존재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아이 친구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방과후강사’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떤 루트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커피를 마시자고도 했다. 견장은 이런 거다.


존재 자체를 몸에 비유한다면 외모, 권력, 재력, 재능, 학벌 등은 몸을 감싼 여러 겹의 옷들이다. 넘치는 관심과 주목을 받는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 아니라 그가 걸치고 있는 옷에 대한 주목이다 찬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직장이나 학위, 직업이 ‘나’가 아니듯 내 돈, 권력, 외모나 재능도 당여니 ‘나’ 자체가 아니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p. 64


아줌마. 전업주부.

끌어안자니, 마뜩지 않다. 그렇다고 내치자니 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이 단어 외엔 없다. 반항적으로 ‘아줌마가 어때서’, ‘전업주부, 좋죠.’, ‘육아와 집안일의 가치를 폄하하지 마세요.’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마다, 이 단어의 무게는 다를 테니.


최근에, 나는 전업주부만의 장점을 하나 발견했다!!! 이건 너무 치명적인 매력이다! 유후~ 그 어떤 직업과도 비교 불가능하게 좋은 점이다. 흐흐흐흐...!!!


나는 독서모임에 나가고 있다. 나는 가능하면, 이 모임에서 엄마, 아내, 언니, 동생이라는 견장을 떼어내고 ‘나’라는 인간 자체로만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내 삶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일상이 가장 큰 무게이기에, 그것을 완전히 떼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의 역할은 그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책을 내 생각의 여과물로 삼아, 42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의문과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이 모임이 차 떼고 포 뗀, 본연의 내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원형적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임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온 후의 감상, 생각, 의문점이 궁금하다.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생각의 포인트가 어디일까. 남들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는가.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는 나를 본다. 나는 어떠한가. 나이나 혹은 과거의 경험으로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는가. 대화에서 이기려고 혹은 아는 것이 많다고 인정받기 위해서 무리하게 이야기하지는 않는가. 나는 ‘솔직한 편’이라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지적하지는 않는가. 비판을 하며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거나, 혹은 반대로 누군가 나를 비판하는 것에 아무 대꾸도 못하여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는가.


인간관계를 크게 고민하지 않고 살아온 나는 서툴다. 관계를 서열로 맺어온 나는 서툴다. 그래서 더 이 관계의 장을 떠나지 않아야 함을 알지만, 가끔은 도망가고 싶다.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인간. 그 존재 하나로 오롯이 일상을 살고, 여타의 모임에서 ‘존재 자체’로만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아줌마 인간. 전업주부 인간. 이것이 ‘전업주부’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앞으로의 내 인생이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아줌마 푼수의 어떤 씩씩함을 스스로 분출해도,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상태여서일까.


내가, 사회적 지위에 그렇게 집착했었던 것은, 어쩌면 그냥 나 자신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법 보다, 내 사회적 ‘견장’을 사용하는 것이, 나 자체로 관계 맺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내가 만나는 사람의 직업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그 사람의 과거 이력을 안다는 것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직업은 곧, 권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내가 그 권력에 포획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아직 내겐 그 정도의 내공이 없다.


나는 말투와 행동이 고운 사람이 좋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좋다. 내 생각을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나와 의견을 조율하는 사람이 좋다. 삶의 용법을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발 딛고 있던 내 전제로부터, 내가 떠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봐 주는 사람이면... 좋을 거 같다.

사회적 견장을 떼고, 1:1로 만나보자.


본연의 ‘나’와 ‘너’로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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