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데, 그래서 좋은 ‘친구’와 ‘지인’ 사이

by 레베카


층간 소음으로 안면을 트게 된 아랫집 아줌마와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서로 간에 매우 머쓱하다.

내가 인사를 하니, 손잡고 가던 아들이 묻는다.

“엄마, 저 아줌마 엄마 친구야?”

“어, 으으응...”

흠칫 당황하게 만드는 단어. 친구. 아랫집 아줌마가 멋 적게 피식 웃으신다. 아들은 내가 아는 지인을 만나 인사만 하면, 매번 내게 물어본다. ‘엄마 친구냐’고. 어린이집 등 하원 시에 자주 마주치는 어느 아이의 엄마인지 잘 모르겠는 아줌마, 놀이터에서 잠시 말을 섞게 된 아줌마. 모두가 여차 저차 하여 나의 동네 친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지금 친구는 아니다. 아랫집 아주머니의 막내아들과 나의 아이가 동갑이기에, 같은 초등학교를 가게 될 것이고, 같은 반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아랫집 아주머니와 내가 어떤 사건들을 통과하게 되면서 엄청 친해질지도 모르지... 만, 지금은 아니다.



친구. 나에게 친구란,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다. 그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살아도 우리의 마음이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을 응원하고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마음. 그 마음이 시공을 넘어서 내게 와 닿는다. 그 마음들이 내 삶의 기둥이 되어주기에, 나는 그 기둥에 기대어 엉엉 참 많이도 울었다. 돈은 없고 시간만 많던 백수 시절, 남자에게 보기 좋게 차여서 울기만 하던 시절,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던 시절 - 그 시절 내가 나의 일상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나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었던 내 친구들의 그 무던함이었다. 나만 아는 나의 구질구질함을 맘껏 드러내도 나를 탓하지 않고, 그냥 받아주던 그 눈빛과 따뜻한 마음들. 엄마가 되고 보니, 친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주는 존재인가 싶다.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뭔가 설레고 좋아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성한테 반하는 것보다 강도는 좀 약하지만, 약간 질투가 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그 사람의 어떤 면에 내가 막 이끌린다. 그 마음을 서로 표현하고 받아주어야 한다. 우리 친구 하자고. 난 네가 참 궁금하다고. 물론 연애하는 것이 아니니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못한다. 오늘부터 우리 친구 1일. 이런 건 없다. ‘밥 먹자’로 만나고, 헤어질 때 아쉬워서 ‘다음에 또 만나자’로 다음을 기약하고.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니 재밌고 대화도 잘 통하고, 그래서 다음에 또 만나고 싶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 노력하는 단계, 이 단계를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확인되고 다져지면, 그 이후로는 누가 뭐라 해도 그 사람은 내 친구다. 흔히 ‘의리’로 설명되는 서로가 서로에게 단단히 결속된 그 마음, 그것이 어디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겠나.


어떤 사람을 내 친구로 만들려면, 나는 관계에의 결속력을 다지는 노력에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노력... 노력... 나는 그것이 요즘 너무 힘들다.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선뜻 만나자고 하지 못한다. 분명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임을 나도 알고 그 사람도 아는 것 같은데, 못하겠다.

나는 전업주부다. 집안일을 해야 하고 육아를 해야 한다. 집안일은 최대한 줄여보려 노력하면 가능한 영역이 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빨래는 ‘에라 모르겠다. 내일 하자’며 애써 빨래통을 못 본 척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나 육아는 피할 수가 없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들 2명. 익숙하지만, 감히 사랑하지만, 이 남자들은 내겐 여전히 버거운 존재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가 내가 에너지를 비축해 두었다가, 잘 분배해서 써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후 8시 즈음부터 나의 체력이 방전되곤 했다. 내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는,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애들에게 버럭버럭 소리 지르기가 시작된다. 객관적으로 애들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 나의 체력의 부침으로 애들에게 화내지 않기, 잘 타일러서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기, 애들에게 자기 전에는 꼭 책 읽어주기. 나는 오늘도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무탈하게 해 내야 한다.


올 해부터 나는 엄마들 모임에 잘 나가지 않는다. 오전 모임에 에너지를 다 쓰고, 오후 육아를 버겁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다. 두세 번 거절했더니, 요즘은 스르륵 멀어져서 만나자는 제안이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되었다. 친구가 되어가는 것은 분명 재밌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사용할 기운이, 지금의 내게는 없다. 나는 그녀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개별적 사연과 이유를 알고 싶지가 않다. 그녀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알면 책임져야 하니까. 그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또 노력해야 할 것이고, 애써 노력하다 보면 이내 지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매우 괜찮은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는 것을 놓치고 있는 중일 것이다. 흔히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우정도 타이밍이다. 나의 몸과 마음이 우정에 집중할 수 있을 때, 그때 만난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나 또한, 오전에 막 신나게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놀고, 오후에는 육아도 거뜬히 잘하고 - 그러고 싶다. 그러나 여러 번의 경험으로 그것이 저질체력인 지금의 나에게는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람이 선선해진 가을 초입,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커피 한 잔 하자’고 카톡을 보낼까 말까 하다가 보내지 않는다. ‘칼국수나 한 그릇 같이 먹자’고 할까 말까 하다가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놀고 싶은 나의 마음을 접는다. 나의 과거를 매우 잘 아는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언니가, 이렇게 술도 안 마시고, 친구랑 놀지도 않고 잘 살다니. 놀랍다”

‘이 녀석... 너도 아들 둘 키워봐’라고 하지 못하고, 난 그냥 웃었었다.



니체라면 활동 과잉의 인간을 역겨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한 영혼’은 ‘평정’을 유지하고, ‘천천히 움직이며’, ‘지나친 활발함에 대한 거부감’을 품기 때문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 - 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

피로사회 p.112. 한병철 저.




나는 저질체력이다. 내 하루의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 삶에서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 선택과 집중. 1순위 육아, 2순위 집안일, 3순위 남편 관리. 전업주부-엄마라는 존재의 마음의 흐름이 이러한 것인가. 살짝 서글프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한다. 그러다 보니, 내 일상의 시간 분배가 매우 명확해졌다. 니체의 말처럼 활동 과잉을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나는 내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질체력으로 인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다.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인 게 느껴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을 나의 노력으로 굳이 친구의 영역으로 당겨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지인이라고 명료하게 선을 긋기엔 좀 친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친구라고 확 끌어안기엔 애매한 사이. 그냥 그렇게 애매하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그게 참 애매한데 편하고 좋더라.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나서 애들끼리 놀게 되면, 엄마들끼리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면 참 재밌고 즐거운데-그렇다고 굳이 오전에 커피 마시자고 밥 먹자고 먼저 ‘들이대지’는 않는 사이. 이렇게 거리를 유지하긴 하는데, 언젠가는 더 친해질 수도 있고 아님 또 스스륵 멀어질 수도 있는 사이. 이게 열린 관계라고 해야 할지, 닫힌 관계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구먼. 그런데 이거, 애매한데 참 좋다.


나는 관계에서 ‘적당히 거리 두는’ 방법을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 이것이 순수한 우정에의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타인을 대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전의 관계가 친구 아니면 지인이었다면, 이제는 ‘친구, 애매하지만 좋은 사람, 그냥 애매한 사람, 학부모, 동네언니, 지인’ - 이렇게 친구와 지인 사이에 여러 부류가 있고, 그 부류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나와 편안하게 잘 지낸다는 것. 나는 그것이 서로가 서로를 싫어해서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각자가 자신의 삶을 집중해서 살다 보니, 그 관계에 머무르는 것이다.


캠핑 클럽에서 이효리는 다른 멤버들에게 후회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너희들을 좀 더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자, 성유리가 말했다.

“아니야, 우리도 우리 산다고 바빴어.”


나도 이 육아 전념에의 시절이 지나고 나면 친구들에게 말해야지

“애들아, 내가 아들 둘 키운다고 너희들을 못 챙겨서 미안해”

그럼 내 친구들이 말하겠지

“난 주택 대출 갚는다고 바빴어”

“난 아들 셋 키우면서 주택 대출 갚는다고 힘들 틈도 없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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