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지금 자랑하는... 거야?

by 레베카


“이번에 우리 남편 출장 가는데 뭐 사 오라고 할까요?”

모임에 나온 아줌마, 현의 질문이다.

“으음... 화장품? 아니면... 음... 뭐든지 인터넷 면세점 사이트에서 장바구니에 막 담아봐유”

내가 대답했다.


결혼 이후 출장이라곤 한 번도 가지 않는 남편과 살고 있으며, 신혼여행 이후 해외여행이라곤 한 번도 가지 않은 나는, ‘어머, 이건 꼭 사야 해’하는 면세점 인기상품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고가의 제품을 ‘면세’라고 유혹하며, ‘지금 아니면 못 사는 것’처럼 파는 면세점 제품에 요즘 같아서는 선뜻 지갑이 열리지 않을 거 같다. ‘그런데, 뭘 사지?’ 하며 고민하는 우리에게, 경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 지금 자랑하는... 거야?”


아, 이게 자랑... 이여...? 남편이 출장 가는 게? 현의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갈 정도의 능력자라고 자랑한 게 되는 건가... 아니면 해외에서 업무를 진행할 정도의 글로벌 사업을 하는 회사를 현의 남편이 다니는 거, 그게 자랑인 건가. 현이 면세점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구매력을 가진 거...? 도대체 뭐가 자랑인 거지? 나는 경에게 뭐 때문에 이게 자랑으로 느껴진 것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 이 동네의 분위기로 미루어 보아, 경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7~8%만 다닌다는 대기업을, 현의 남편이 다니는 것을 자랑한 것이라 여기는 듯싶다. 우리 동네의 수많은 남편들은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도시 구성원의 30퍼센트는 족히 넘지 않을까... 나의 아이들이 4세 때 다닌 어린이집은 한 반에 8명이었다. 그중 5명 어린이의 아빠가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꽤나 많은 가정의 아빠가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


- 이번에 H그룹에서 나온 복지 포인트는 어디다가 쓰는 게 제일 효과적일까요?

가장 효과적인 사용처는 에버XX인가요?


- S사에서 주는 유치원 보조비는 아이 5세부터 나오죠?

그런데 아이가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에 계속 다녀도 신청하면 받을 수 있나요?


이 질문이 너무 무례한가? 아니다. 그렇다고 ‘갑질’스럽지도 않다. 일부러 타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교묘하게 돌려서 하는 말도 아니다. 질문 자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기분이 어떨까? 무례, 갑질, 상처 등의 단어와는 다르게 맘이 상할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에 끼일 수가 없구나’,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 박탈감이 느껴진다. 몰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지만, 알면 기분 나쁜 ‘상대적’ 박탈감. 나도 먹고 살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생활을 더 윤택하게 해 줄 것만 같은 저런 혜택들. 나도 넙죽 받고 싶다. ‘내가 모자라고 부족해서 못 받는 거지... 뭐...’ 스스로 초라해진다. 이런 유의 박탈감의 귀결은 대부분 ‘자책’이다. 나는 내 낮은 수능 성적을 어언 20여 년간 타박해 왔다. ‘그때, 내가 수능시험을 조금만 더 잘 쳤더라면...’ 결국, 능력 없고 지나치게 예민한 나만 남아, 동동 떠다니는 이 감정을 끌어안고 ‘알아서’ 삭혀야 한다.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정확하게 잘 모른다. 상대가 오묘하게 기분 나쁜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아마 꽤 오랫동안 모를 수 있다. 해당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게는 정보교류 차원에서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그저 일상적인 대화라서,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숨겨야 할지 그 경계마저도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들. 듣기 싫은 누군가가 ‘자랑하냐?’로 대처하면, 아마도 ‘뭔 말도 못 하게 하냐.’로 응수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피해 가려면, 예민해야 한다. 신경 촉수를 곤두세워, 모임 구성 멤버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가며 기분 나쁨 게이지(gauge)를 읽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되지 않는 대화를 하려 하다 보면 대화가 매우 제한된다. 그렇게 고려하고 제한하고 피해가야 함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든다. 그래서 점점 더 경제력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속 편하게 각자의 사정을 드러내고, 해당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이야기하게 되나 보다.


만약에, 잘 나가는 피부과 의사를 남편으로 둔 아줌마가 나에게

“이번에 우리 남편이 레이저 기계를 신제품으로 교체해서, 빚이 3억대가 넘어서 살림이 쪼달려”라고 한다면...? 허허허. ‘저한테, 왜 이러세요’라고 생각만 하고, 내가 먼저 안 만날 거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의 친구들은 아주 부자도 아주 빈자도 없다. 그냥 다 비슷비슷하게 그럭저럭 먹고사는 서민과 중산층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과거에도 나는 너무 부자는 부담스러웠다. 또 너무 가난한 사람에게는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경제력이 비슷한 끼리끼리 모이게 되나 보다. 속편하게. 씁쓸하지만, 이게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현실임을. 받아들이거나, 개념치 않거나. 개인의 선택이지만 후자는 마음의 근육이 꽤나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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