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4세 때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1년에 한 번, ‘엄마랑 함께하는 소풍’이라는 행사를 했었다. 아이들이 먼저 소풍지에 도착해서 놀고 있으면, 엄마들끼리만 따로 버스를 타고 간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소에 몰래 엄마들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그날 하루 엄마와 함께 즐겁게 노는 행사였다. 행사를 가기 전부터 나는 긴장했다. 어떤 엄마랑 짝지어서 버스를 탈지. 어떤 엄마랑 함께 어울려 도시락을 먹을지. 어떤 엄마랑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할지.
“저기, 민지엄마 이번에 엄마랑 함께하는 소풍 갈 거지?” 내가 물었다.
“응, 당연히 가야지”
“그럼, 버스에서 나랑 같이 앉...을...래?”
“그래, 그럼 아파트 후문에서 만나서 버스 타러 같이 가자”
다행이다. 민지엄마. 고맙다. 당시, 나랑 민지 엄마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고 내가 민지엄마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우리는 짝을 하기로 했다. 맘이 한결 편안하다.
어린이집 엄마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은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친구 하나 즈음은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친분 있는 사람에게 미리미리 연락하고 ‘그날 나랑 놀자’고 약속을 해 두어야 하는 상황. 초등학생 때부터 해 온 이 짓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다.
이게 우정은 아니잖아.
여자에게, 우정은 도대체 뭐길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쭉- 이렇게 행동해온 걸까.
미국 뉴멕시코 대학교의 진화심리학자 제이콥 비질(Jacob. M. Vigil)은 여자의 우정과 남자의 우정은 그 성격과 심리가 매우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중략) 더 친밀하다는 의미는 여자가 남자보다 서로 개인적인 정보를 더 많이 공유하며 동일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서로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중략)...
제이콥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여성은 결혼과 함께 친족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자신을 보호해줄 친족이 없는 상황에서 여성은 우정에 기대기 시작합니다. 여자들 사이의 친밀한 우정은 남편이 없는 사이 자신과 자녀를 지키는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보다 친밀한 우정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만약 제이콥의 가설이 옳다면, 여자의 우정이란 단순한 친밀감 쌓기가 아니라 생존 전략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본능적 욕구가 우정을 쌓고 지키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 초등 상담 백과 서울 초등 상담연구회 지음 p.329~330
나는 아줌마 그룹에서 매우 잘 지내는 한 여인을 알고 있다. 편의상, 그녀를 명이라 하겠다. 명은 첫째 아이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시기에 맞춰 이 곳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이사 후, 첫째 아이 등, 하교 시간에 자주 마주치게 된 엄마 6명을 사귀었고, 그녀들과 5년이 지난 지금도 매우 잘 지내고 있다. 명은 남편과의 15년 결혼생활 중에 같이 산 건 4년 정도라고 했다. 명의 남편은 해외출장이 매우 잦은 직업이고, 한 번 나갔다 하면 반년 만에 돌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명의 첫째 아이 유치원 졸업식에는 아빠 대신 외할머니가 있었고, 둘째 아이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새벽에 응급실에 갈 때는 혼자였다고 한다. 자는 첫째 깨워서 차에 태우고, 고열에 온몸이 뜨거운 둘째 달래며 응급실에 갈 때는 눈물도 안 났다고 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혼자서 감당해 내야 하는 여러 일을 겪으며, 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본인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친구였으리라. 엄마 대신, 아빠 대신 내 아이를 돌보아 줄 수 있는 지척에 있는 친구.
명은 6명의 친구가 이곳에서 살게 해 주는 버팀목이라고 했다. 명의 남편 또한 명을 보며 놀란다고 했다. 사람 잘 사귀고, 가끔씩 아이도 다른 집에 맡기고 하는 명. 그런데 명은 본인이 과거에는 매우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해외로 자주 나가는 남편 덕에, 명은 우정으로 살 길을 개척한 것이라고 말한다.
명의 경우는, 제이콥 박사가 말한 ‘친밀한 우정은 남편이 없는 사이 자신과 자녀를 지키는 사회적 안전망 역할’이라고 설명하는 것에 거의 들어맞는 케이스다. 명에게 이곳에서의 우정이란, 생존 전략의 한 형태였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6명의 그룹 멤버가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망 구축이라는 전략적 의도와 접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5년간의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싫어도 만나고 좋아도 만나고 하면서 말이다. 세월의 힘은 그녀들을 짙은 우정과 더 강한 결속력의 단계로 넘어가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명은 그렇게 우정을 공고히 하기 위해 5년의 세월 동안 부단히도 노력했을 것이다. (나는 명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그 ‘누구’라도 좋으니, 신도시 이곳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구해왔었다.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렇지 않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있어줄 사람이면 되었다. 효용으로써의 관계 맺음을 시도한 것이다. 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내가 너무 외로워서 어떤 대상이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사귀어진 것이라면,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물론, 명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그 관계가 결속력을 갖출 수는 있겠지만.
전략상의 우정이라면, 전략이 언제라도 수정 가능하다는 것을 내포한다. 현재 그룹보다 더 나에게 안전함을 제공하는 새로운 그룹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전략상 이적이 가능하다는 말 아닌가. 이게 우정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의리를 지키자’는 명목하의 전략적 제휴관계이지는 않을까.
사실 나는 같은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라는 명목 하에 모이는 엄마들에게서, 서로가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한 존재로써 옆에 있어주길 바람 하지만,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만나지 않을 태세를 갖춘 느낌을 받았었고, 나 또한 그렇게 행동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겠다. 눈빛으로, 태도로 충분히 전달되는 그 비언어적 메시지들.
나는 사람을 그냥 ‘반해서’ 좋아하고 싶다. 웃는 게 참 예뻐서. 농담을 참 잘해서. 비유를 멋지게 해서. 사용하는 어휘가 풍부해서. 성격 까칠하고 하는 말마다 다 맞아서 감당하기 어렵지만, 바르게 살아서. 신박한 뭔가에 이끌려 그녀가 막 궁금해서 ‘친구 하자’고 하고 싶다. 내 생존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전략상의 우정이 아닌, 그냥 좋아서 사귀는 우정. 나는 그거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