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플랫폼에 글을 올리기 전, 나는 몇몇의 친구에게 나의 글 ‘어린이집 사교계 진출 시도와 좌절에 대하여’의 초본을 보여 주었었다. 나의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아줌마 그룹에 속하려고 애쓴 거야?”
“응?”
“난 네가 자주 외롭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독립적이고 혼자 시간도 잘 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 음... 난 아줌마니까...?”
아줌마니까, 아줌마 그룹에서 아줌마랑 놀아야지... 그럼 누구랑 어디서 놀꼬...? 직장인이랑은 놀 수 있는 시간대가 달라서 놀고 싶어도 못 놀아요. 나는 이 친구가 아직 결혼을 안 해서 뭘 모르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도, 저 질문이 계속 생각났다. 내가 왜 그랬지? 나는 왜 그토록 애를 썼던 걸까.
내가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전업주부로 사신 친정엄마의 삶의 모습을 답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달력마다 7인계, 학우계, 미인계, 칠성계 등의 ‘계모임’이 빼곡하게 동그라미 쳐져 있는 친정엄마의 사교적인 성격을 닮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나. 아침마다 우리 집(지금은 친정집)에서 커피타임을 가지던 동네 아줌마들의 모습. 나의 롤모델은 사교적인 친정엄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아줌마, 친근하고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잘 섞이는 ‘동네 아줌마’의 역할을 나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늦은 결혼 때문이었을까. 그 결함 아닌 결함이 표시 나지 않게,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나는 예전부터 어떤 아줌마 그룹에 속해있던 것처럼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모두 다 정확한 대답이 아니다. 대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대답이다. 나 스스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아줌마 그룹에 속하고 싶었던 걸까?
문제의 답은 언제나 의문이 발생하는 그곳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까먹는다. 자신이 물음을 던져 놓고 대답은 다른 데서 찾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질문을 자신만의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로부터 질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정작 대답은 누구나에게 옳은 것을 찾는 식이다.
- 문성환, ‘전습록, 앎은 삶이다.’ p.51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왜?’라는 의문, 그 자체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에게 물어보는 ‘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를 설득시켜 달라’는 뜻이다. 버텨왔던 너와 나의 생각의 다름이 특정 부분에서 턱 하니 부딪힌다. 그래서 상대의 설명을 듣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하면서 두루뭉술하게 ‘싫다’라는 느낌만 들었던 나의 생각이 더 명확하게 정리되기도 한다. (부부 싸움하면서 많이 느낀 점이다. ^^)
내 안에서 일어나는 ‘왜?’는 하기 싫음과 동의어인 경우가 많다. 하기 싫은 내 마음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끌고 가고자 하는 나와, 그것에 피로감을 느껴 그만두고자 하는 내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때, 왜라는 물음이 반항적으로 올라온다.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왜 전화 안 했어?’ 답은,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 갔거나, 여자를 사랑하지 않거나. ^^
결국, ‘왜?’라는 질문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게 던져진 질문, ‘왜 그렇게 아줌마 그룹에 속하려고 애 섰어?’는 ‘속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그 대답의 출발이었다. 초반의 어떤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는 모임 자체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컨디션 탓을 하며 모임에 나가지 않을 궁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아줌마 그룹에서 최대한 튀지 않으려 했다. 인터넷 맘 카페에서 글로 접한 여러 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선배 맘들에게서 들은 여러 ‘괴담’때문인지. 나는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했다. 거기에다, 돌아서면 들리게 될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뒷담화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했다. 애들도 엮여있으니, 나의 작은 잘못으로 인하여 혹 아이의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이 ‘착한 아줌마 코스프레’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는지...?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절한 시기에 화제를 전환하곤 했다. 그런데 이 그룹에서는 처음부터 계속 듣는 역할을 하다 보니, 대화의 어느 순간에 치고 들어가야 할지 점점 가늠이 안 되곤 했다. 그리고 내가 듣기에는 좀 거북스러운 이야기를 계속할 때,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돌려서 나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었다. 너무 공격적이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부드러우면 상대가 잘 못 알아들을 거 같았다. 자주 내 의견을 이야기할 타이밍을 놓쳤다. 좋은 게 좋은 거. 나는 착해야 하니까, 그냥 넘어갔고.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는 불만의 감정이 쌓여갔다.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비하성 언어와 각종 표현들은 일상이라서 더욱 풀기가 어렵다. 늘상 반복되어온 탓에 익숙해진 데다가 워낙 비일비재하여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렵다. 특히 유머로 던진 말에 정색을 하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유머와 놀이를 가장한 비하성 표현들은 그렇게 ‘가볍게 만드는 성질’ 때문에 역설적으로 ‘쉽게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이런 언어 공격은 인간 내면의 아주 본질적인 부분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반면, 그 말이 왜 문제인지 설명하기는 너무나 어렵고 설명할 기회의 순간은 짧다. 우리는 대개 말문이 막힌 채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친다.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p.98
(아들만 둘인 나를 보고)
- 우리 시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 며느리 집에는 가는 게 아니라고.
- 같이 살아보니까 남자는 좀 멍청하더라고. 아들들도 그렇지? 요즘은 전교 1등도 다 여자애들이야.
- 6살 후반인데, 아직 한글을 못 읽으면 어떻게 해요?
- 아직도 외식을 두려워한다고? 애들한테 그냥 핸드폰 보여줘. 돈도 적당히 쓰면서 살아야지 지역 경제도 살아나지 않겠어?
당황스럽다. 생경하다. 어른 여자 인간과 이런 식의 대화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내 과거의 인간관계에서 이런 식의 치고받는 대화의 기술을 심도 깊게 경험해보지 못한 탓일까. 말문이 막혀서 주저주저하다 보면, 그룹 멤버들은 나에게는 이래도 된다는 인증이라도 받은 듯이,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이런 말들을 내게 스스럼없이 하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기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그룹보다 민주적이며 평등할 것이라 예상했었던 ‘아줌마들’끼리의 관계가 어쩌면 제일 서로를 견제하며, 서열 매기기에 열중인 그룹일지도 모르겠다. 줄을 세워 줄 딱 하나의 기준이 없으니까. 회사나 군대가 직급으로 서열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줌마들끼리는 삶의 조건 - 재력, 사회적 지위, 패션센스, 아이의 똘똘함 정도, 대화의 기술 - 등의 변수가 총망라되어 힘의 역학관계가 형성된다. 나는 인간이 얼마나 스스로를 타자와 비교해서 불안해하는지, 그리고 그 불안을 언어 공격으로 해소하는지를, 짧은 아줌마 그룹 활동을 통하여 조금은 알게 되었다.
적당한 선에서 나의 의견을 내고, 적당한 선에서 나를 방어하고, 적당한 선에서 솔직함을 드러내고, 적당한 선에서 맞받아 치기 - 좋고 싫음이 명확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며, 한 번 친해지면 나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나에겐, 이 ‘적정선’을 찾는 것부터가 숙제였다.
내가 아줌마 그룹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인간관계에 대처하는 미숙함’ 때문이었다. 그것이 매 모임마다 매우 여실히도 드러났다.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지만 관계를 그르치지는 않을 정도로 적절하게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관계에의 기술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그럼에도, 그룹에 속하려고 ‘애쓴’ 이유는, 단 하나다. 8년을 살아도 여전히 어딘가 생경한 이곳에서 전업주부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구하고 싶었다. 남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자주 일어나는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에 대답 비스므리한 것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아줌마끼리 이런저런 고민에의 연대를 하면서 전업주부인 40대 여자가 삶에 대처하는 자세...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었다. 또한 나만 모르는 육아 꿀팁, 동네 맛집, 살림 노하우 등의 정보를 구하고자 했고, 또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자 했다.
나는 육아 고민을 자주 토로했었다. ‘설치는’ 아들 훈육 방식을 나누고,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의 경험담을 귀담아 들었다가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해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 아이에는 그 엄마의 추천법이 잘 들어먹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 정서 함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홍대 미대 출신 원장 직강’ 미술학원을 추천받았다. 내가 자동차를 미술 학원 앞에 주차하자, 아들들은 뒷좌석 카시트에 매달려 차에서 내리지를 않았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들은 그 비싼 미술학원을 8회를 다 못 다니고 그만두었다. 또 나에게 학습지를 추천하는 엄마가 있었다. 내가 놀이터 우레탄 바닥에서 레슬링 하는 나의 아이들을 가리키며 ‘제 아들들입니다’라고 하니, 그 엄마는 끄덕끄덕하며 학습지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내 앞에 놓인 물음은 나의 것일 뿐이며, 그렇기에 이 물음에 대한 대답 또한 나 이외에 누구에게서도 구할 수 없다는 철저한 자각이었다. - 문성환, ‘전습록, 앎은 삶이다.’ p.51
나는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 육아도, 살림도, 인간관계도 크게 잘 해낼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너무 애쓰지는 않으려고 한다. 애쓰면 하기 싫어지니까. 나의 질문은 남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이 자각만으로도 가끔은 내겐 너무 무거운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