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의 아이가 4세가 되어 ‘어린이집’이라는 기관을 다니게 되었다. 야호!!! 이제 나도 어린이집 엄마들을 사귀어야겠다. 그녀들을 사귀어 동네 맛집 식당도 가 보고, 놀이터에서는 애들끼리 놀게 하면서 육아정보도 나누고, 햇살좋은 날에 어디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도 가고. 나는, 나의 입담과 푼수끼로 ‘엄마들 사이에서 인싸가 되리라!’ 마음먹었었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사람을 사귀고 싶었던 엄마들이 여럿 있었던 모양이다. 어린이집 입소 2주쯤 지난 3월 중순의 어느 날, 4세 황우주 어린이 엄마가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본다. 그리고 우주 엄마는 나에게
“이미 사귄 엄마들끼리 단체 카톡을 하고 있으니, 합류하시겠어요?” 라고 제안했다.
“물론이죠. 두 번, 세 번 끼워주세요. 막 끼워주세요.”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단체 카톡방 멤버는, 나 포함 6명이었다. 나는 나이, 주소, 언제부터 어린이집을 보냈는지 등의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카톡 대화는 주로 육아의 고단함, 육아 용품, 동네 맛집, 가끔은 시댁 험담 등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6명으로는 좀 모자라니, 4세 어린이 엄마들을 좀 더 합류시켜보자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6명의 단체 카톡방 멤버는, 모두 첫째의 나이가 4세인 엄마들이었다. 아무래도 둘째나 셋째가 4세인 엄마들은 이미 첫째인 아이를 중심으로 한 소속그룹이 있거나, 엄마들 모임에 딱히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아...어린이집 엄마들 모임은 첫째 아이 위주로 결성되는 것이구나!' 나는 엄마들 모임 결성에의 핵심 비밀이라도 알아챈 듯, 첫째가 4세인 엄마들을 주로 관찰했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우리 그룹에의 합류를 제안 해야겠다 생각했다.
단체 카톡방 멤버 중 한 명이 모닝커피 번개를 제안한 아침이다. 마음이 바쁘다. 오늘도 역시나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겨우 어르고 달래서 등원시켰다. 벌써 모임시간은 지났고, 커피숖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나의 아이와 같은 대나무반 서준 엄마가 보인다.
“저기, 서준 엄마. 같은 4세 엄마들끼리 지금 커피 마시고 있는데요, 같이 가실래요?”
“아, 그래요. 네 같이 가요”
커피숖에 도착하니, 두 명 엄마가 와 있다. 서준 엄마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서준 엄마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10여 분쯤 지나니, 채아 엄마가 왔다. 채아 엄마가 커피숖으로 들어오는 순간, 서준 엄마가 긴장하는 듯했다. 서준 엄마가 이내
“저...먼저 가볼께요. 오늘 시댁 어르신들이 오셔서요. 청소를 좀 해야해서요.”
라며 자리를 뜬다.
“그래요. 다음에 봐요”
서준 엄마가 자리를 뜨자마자, 채아 엄마가 사뭇 비장한 얼굴로 이야기를 한다.
“사실, 내가 서준 엄마랑 말도 안 하는 사이야. 우리 애랑 서준이가 작년에 어린이집 같은 반이였는데 그렇게 됐어.”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왜, 우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니 마음대로 사람을 데려와서 이렇게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야. 이제부터, 사람 끼우려면 우리에게 먼저 이야기 해 줬으면 좋겠어.”
그러자 수한엄마가 거든다.
“알았어. 그럼 우리는 서준 엄마랑은 인사정도만 하자, 아, 그냥 우리끼리 놀아. 채아 엄마, 그만 화 풀고. 응?”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되었고, 나는 눈치 없는 인간이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 앞으로 서준 엄마랑은 안 놀겠다는 건가...서준 엄마...어떻게 해야 하지...내가 엄마들 사이에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아냐고. 어린이집 4세 엄마들은 다 어울려보자는 것 아니었나...누구는 끼우고 누구는 안 끼우는 거...이거 뭐지?
나의 고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것이 속칭 ‘은따’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히야...아줌마들끼리 은근 따돌림이 있다고 말만 들었지, 내가 은따를 조장하는 그룹의 멤버가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서준 엄마 얼굴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나는 너무 갑갑했다. 나는 나의 1호 친구,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여보, 나 서준 엄마에게 사죄라도 해야 할까봐, 미안하다고 따로 만나자고 해 볼까?”
“어허이...아주머니, 이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으시면, 그냥 가만히 있으슈. 소문나면 끝장이다.”
역시, 남편. 너는 이성적인 인간.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다. 소문나면 끝장.
그 후로, 그녀들은 진짜로 서준 엄마와는 가벼운 목례정도만 하고 일체 말을 섞지 않았다. 서준 엄마 또한 구지 카톡방 멤버 엄마들과 섞이려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행보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상태였다. 가끔 나는 눈치껏, 서준 엄마와 대화를 나누었다. 놀이터에서 보거나 아이 등하원 시간에 만나게 되면 애써 말을 걸었다. 잘 지내시냐는 안부정도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서준 엄마에게 내가 미안해하고 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서준 엄마, 나는 재들이랑 달라. 나는 은따같은거 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애써 설명하려는 나의 애매한 태도. 이건 또 무어란 말인가. 서준 엄마는 나 또한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 한 편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 귀찮았다. 나의 아이는 어린이집에 무척이나 적응을 못 했다. 거의 매일이 눈물의 등원길이였고, 하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신을 엄마 없는 그곳에 데려다 놓은 나를 질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엄청난 짜증폭탄을 부렸다. 나는 아이를 달래다가 소리 지르고 다시 반성하기를 무한 반복하는 나날들이었다. 아무리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휴식의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육아 이외의 다른 일에 사용할 에너지가 거의 없었다. 육아만으로도 고단한 나나들이였다. 그런데 이런 일까지 일어나다니! 어린이집 엄마들 만나서 육아스트레스도 풀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너무 이상적인 기대였던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닌다고 해서, 내 육아의 고단함이 아주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것도 아니었고, 사귀게 된 어린이집 엄마들도 고단한 내 삶에 위로가 되어주질 못하는 시절이었다.
나는 카톡방 멤버로 잔존은 하지만,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6월이 되었다. 어느날, 그 카톡방 멤버였던 한 명이 나를 따로 만나자고 했다.
“나 카톡방 나왔어.”
“어? 언제? 나는 왜 몰랐지...(핸드폰으로 확인하고) 자기 그대로 있는데?”
“흠...너 없는 카톡방을 채아 엄마가 만들었지. 그리고 그 방에서 거의 이야기했어”
“어쩐지...대화가 없더라니, 예상은 했다만...”
그녀는 본인이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카톡방을 나왔으며, 그래서 본인이 지금 너무 힘든 이야기, 그 멤버들이 자기를 괴롭혔던 이야기, 또 카톡방 멤버들이 나를 험담한 이야기 등을 주저리주저리 나에게 고자질하듯 쏟아놓았다. 그래서...어쩌라고...나도 나오라는 거야 뭐야...너는 왜 나를 만나자고 해서 이러는 거니...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에 휘말리고 있나...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나는 내 신세가 갑자기 너무 처량했다. 아니, 나를 포함해서 이렇게 지내야하는 우리 모두가 애처로웠다. ‘그래서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영화대사처럼, 그저 밥 먹고 잘 지내길. 우리 모두가.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일로도 그녀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속한 카톡방은 대화도 없는 방 이였고,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그녀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우아하게 카톡방을 나왔다. 우리는 계속 어린이집 등,하원할 때, 놀이터에서 그리고 동네마트에서 원하던 원치 않던 마주치게 될 테니까.
여기까지가 내가 그렇게도 고대했던 어린이집 엄마들 모임 진출에의 행보다. 카톡방에서 스스로 탈퇴함으로써, 지난 3개월간의 지지부진했던 카톡방 멤버들과의 관계에의 막을 내렸다.
내가 이렇게나 관계맺음에 어설픈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채아 엄마가 너무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을까. 처음 카톡방 에서부터 서로 껄끄러웠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더 강화된 것일까. 작년에 채아 엄마와 서준 엄마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있었으니, 채아 엄마는 아마도 서준 엄마보다 미리 사람들과의 친분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더 긴장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곳 신도시에서는 육아맘은 너나할 것 없이 대부분이 독박육아인지라, 그 고단함과 외로움의 경중을 따지기가 어렵다. 채아엄마 역시, 육아가 체력적으로 부치고 마음도 외로웠을 것이다. 채아엄마는 서준엄마랑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는 서로에게 기대며 마음을 나누었다고 했었다. 그렇게 사이 좋았던 시절처럼, 채아 4세가 되면 새롭게 다른 엄마들을 사귀여서 서로를 챙기며 육아와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이해는 여기까지.
나를 제외한 5명은 채아엄마의 서준엄마 배제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들이라고 일말의 고민이 없었으리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그녀들은 채아 엄마 편을 들어주었다. 아마도 채아 엄마를 좋아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그 제안은 좀 껄끄럽지만, 엄마들 그룹에 속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택했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남편은 나의 행보를 보며, 어설픈 정의감 때문이냐며 놀리기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내가 또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배제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없었다. 나는 옳았을까. 내가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만약에 나도 추가로 카톡방에 합류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처럼 미리 채아 엄마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나 또한 그 제안에 수긍했을 지도 모른다. 개인의 도덕성의 높고 낮음 보다는, 친분도가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옳음 보다는 친절함.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이상한 부탁이나 제안은 별로 따지지 않고 잘 수긍하는 편이다.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다수인 5명이 채아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만한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테니, 다수의 선택이라면 그것은 과연 옳은가? 옳고 그름보다는 나에게는 ‘힘’의 문제로 보였다. 놀이터나 아파트 공터 등에서 채아 엄마를 포함한 5명의 그룹은 아이들을 모여서 놀리곤 했다. 그리고 엄마들은 공통의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들을 번갈아 돌보아 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들 5명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 서준 엄마나 나에게는 그녀들이 더 힘 있게 보였다. 왠지 범접할 수 없었고, 나의 아이들이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놀며 문제가 발생되면, 무조건 나의 아이의 잘못이 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었다. 뒤돌아서서 나의 아이를 험담하거나, 내가 어떤 대처를 했더라도 그 아이의 엄마인 나를 험담하는 상황이 그려지곤 했다. 아이가 엮여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건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사건이 많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해석의 나름이기에. 다수가 마음을 맞춰서 그것이 옳다고 주장해 버리면, 다른 주장을 하는 나머지 한 명은 졸지에 '바보'가 되어 버린다. 옳고 그름이라는 진실은 이미 저 너머로 날아간지 오래다.
그래서 웬만하면 나는 그녀들의 아이들이 노는 곳은 피해서 다른 장소를 물색해서 나의 아이들을 놀리곤 했다. 서준엄마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것이 다수가 가지는 힘이다. 그룹에 속한 엄마들이 힘의 논리를 계산해서 움직였다고는 볼 수 없다. 친분감의 연대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하지만 다수는 모여 있는 것만으로 일단 힘을 가지기 마련이다. 초 중 고등 학창 시절 12년을 30명 이상의 학우가 한 반에서 보낸 우리가 이 힘의 논리를 모른다고 시치미를 뗄 수는 없지 않는가.
외로운 독박육아, 그 육아의 고단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 그룹이 주는 안정감과 힘의 논리, 내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의 엄마-하지만 나는 왠지 불편한, 이 모든 것이 섞여서 ‘엄마들 그룹에 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이 문제는 늘 엄마들 사이에서 화두다. 유년 시절 학교에서 겪었던 은따, 왕따, 에이스 그룹의 폭력성의 문제가 그대로 엄마들 버전으로 아이 문제까지 엮여서 좀 더 버라이어티하게 재현된다고나 할까.
남들의 이야기라면 가벼운 가십거리만, 내가 겪으면 고단한 아줌마들의 그룹이야기.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며, 사람을 사귀어야 하는걸까.
육아의 고단함과 친구사귀기의 어설픔. 뭐가 더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