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의 뒷담화 - 3종 세트

by 레베카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세 명의 아줌마가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온 우주의 에너지를 나의 귀로 모아 모아, 내가 엿듣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들키지 않게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들어보았다.

“아우, 매일 아침 등교 시에 얼굴 봐야 되는데 이제 어떻게 해...”

“그러니까요, 내 말이요”

“그 엄마는 왜 사과를 안 하는 거야”

“애도 진짜 공격성이 장난이 아니더라니까요”

“엄마 닮아 그런가, 애를 그렇게 키우면 어떻게 하니.”

아이들끼리의 다툼이, 어른끼리의 다툼으로 커진 사건이구만. 여타 도시에 비해서 초등학교가 과밀학급이라는 이 도시에서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비일비재한 사건 중 하나인가 보다.

이 정도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상대 아이 엄마 뒷담화인가? 아니면 당사자 아이 엄마의 고민 상담인가? 고민을 나눈 엄마 입장에서는 상담일 테고, 만약 이렇게 이야기 나눈 것을 상대 아이 엄마가 알게 된다면, 당연히 뒷담화 했다고 여기겠지. 내가 하면 고민상담, 남이 하면 뒷담화?

아줌마 여자들의 고민 상담인, 뒷담화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나는 만 2년 반 동안, 내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면서 만나게 된 엄마들과 매우 다양한 종류의 뒷담화를 나누었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종류의 뒷담화를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한 적이 있을까.

나는 아줌마 뒷담화의 종류를 3개로 분류해 보았다.

< 매우 센스티브 하심 - 행동 하나하나가 다 맘에 안 들어. >

너무 예민해서, 세상사 모든 것이 다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들은 철옹성같이 부서지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과 잣대로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꼬박꼬박 세심하게 재단한다. 타고난 천성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살면서 겪었던 여러 사건들이 그녀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3초 만에 급격하게 피곤해진다.


가상의 인물 예민이 엄마로 예를 들어보자면, 예민이 엄마는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 우리 애는 잘 챙기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말이야, 다른 여자 아이 머리만 예쁘게 땋아준다거나, 우리 애는 선생님 무릎에 앉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내 아이 성격 파악조차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다. 기회를 봐서 언젠가 한 마디 하려고 벼르고 있다. 또, 어린이집 원장도 마음에 안 든다. 돈만 밝힌다. 선생 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원장이 챙겨야 하는 부분에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어린이집 교사도 자주 교체된다. 원장 재량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맘에 안 든다. 이 문제는 예민이가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를 가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또 예민이 어린이집 등 하원 시에 서로 얼굴은 멀쩡히 아는데 인사 안 하는 엄마도 마음에 안 들고, 언제 봤다고 너무 친하게 들이대는 엄마도 마음에 안 든다. 뭐 이래저래 어른끼리 서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하소연인 양 하는 험담은 예민한 사람의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미 정도로 이해 가능한 수준인 경우도 있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뒷담화는 4살짜리 아이를 욕하는 것이었다. 애가 너무 영악해서, 예민이를 만만하게 보고 인형처럼 가지고 놀려고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듣는 도중, 나의 심장이 덜컹하더니, 그 이후로 박동수가 매우 빨라지는 경험을 했다. 내 심장이 이제 예민이 엄마의 이야기를 그만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후, 예민이 엄마를 피하게 되었다. (또 어디서 내 험담을 할 수도 있겠지만. ^^)


세상에, 일상적으로 겪는 대부분의 일에 이렇게도 화가 난다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 싶지만, 그녀들은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차곡차곡 쌓이는 부정의 감정을 타자에게 쏟아내듯 내뱉으면서 말이다. 말로 쏟아내고 나면 부정의 감정 수치가 낮아진다. 그렇게 해소하고 또 부정의 감정을 쌓아간다. 삶이 그렇게 회로처럼 돌아가리라. 부정의 감정이 쌓이고 - 뒷담화로 해소하기의 무한 반복.


일단, 나는 예민녀들은 피하고 본다. 솔직히, 좀 무섭기도 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맞다. 내가 피하고 있음을 인지시켜 주는 것이, 그녀에게도 좋을 것이다. 다른 상대를 찾아, 부정의 감정을 해소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인관관계를 맺는 나쁜 습관 - 너 나랑 험담 같이 했잖아. 우리 친해졌지. 그치? >

모임 이후 헤어져서 개인적으로 카톡이 오거나, 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다. 내용인즉슨, 오늘 모임에서 뭔가 불편했던 것을 토로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자신을 무시한 것인지 모르겠으니 제삼자인 나의 생각을 물어보거나, 자신이 모임에서 한 말이나 행동이 잘못된 것이냐고 나에게 확인 차원에서 묻는 것이었다. 처음엔 몰랐다. 이게 ‘험담을 같이하자’는 신호라는 것을.

이런 경우, 참 대처하기가 어렵다. 맞장구를 치자니, 같이 누군가를 험담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고 에둘러 이야기를 하자니, 내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 못 하고 내치는 것만 같다. 나의 경우는 일단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반복해서 동일한 생각이 들면, 나 말고, 대상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서 풀어보라’ 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고민이라서 방법을 같이 모색해보고자 연락을 한 경우도 있겠지만, 은밀하게 둘만의 친분 쌓기가 목적이라면, 이런 사람은 일상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매우 가볍게 악함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한 짓에 너도 기꺼이 동참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함께 한 나쁜 짓은 비밀스럽게 지켜지고, 우리끼리만 알고 있다는 짜릿함마저 공유된다. 그렇게 험담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는 우리끼리 급격하게 친밀해진 거라고 착각하게 된다. (물론 영원한 비밀이 없기에, 구설수에 오르거나 삼자대면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얄팍하기가 짝이 없는 ‘흔들리는 우정’이다. 뒷담화 후에는 상대방이 언제라도 뒤돌아서 나를 험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떠안고 지내야 한다.


이 방법은 친구를 사귀는 건강한 방식을 모르거나, 혹은 누구라도 좋으니 급하게 사람을 사귀고 싶을 때 선택되어질 수 있다. 또 이 방법을 습관적으로, 아무런 도덕적 고민 없이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진지하게 우정을 나누는 경험을 해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친구란 험담의 공유로 사귀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이 방법은 손쉽고 빠르게 상대와의 유대감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유대감은, 순간적 감정일 뿐이다. 모든 속성의 법칙이 그러하듯이 - 빨리 만들어지면, 빨리 무너지기 마련이다.


< 만날 때마다 남편욕, 시댁욕 - 뒷담화인가, 고민 상담인가.>

위의 두 경우와는 다르게, 나는 만날 때마다 매번 같은 문제로 반복되는 이야기를 하는 엄마들에 대처하기가 매우 고민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시댁 욕과 남편 욕. ‘이것만 빼고’ 그녀들은 이미 나에게, 친근하고 좋은 사람들이 되어버렸으니까.

엄마들끼리 모임에서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후부터는, 내 아이의 친구의 엄마라는 경계를 넘어서 그냥 ‘나의 친구’처럼 되기도 한다. 그 사람 자체가 익숙해지고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통과의례처럼 ‘시댁 욕’과 ‘남편 욕’이 한 차례 지나간다. 한 명이 ‘우리 시댁은 어디에 있고, 우리 남편은 몇 째이고, 결혼할 때 십 원 한 장 보태준 것이 없으며... 어쩌고...’로 시작하면, 모임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이 동참하여, 자신의 시댁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은 섭섭함과 부당함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이런 속내를 듣는 것이 ‘친구 아이가(아니가)’라는 친분감의 표시이긴 하지만. 딱히 시댁욕과 남편욕을 할 게 없는 나로서는 매우 버거운 시간들이었다.


돌아가면서 남편 험담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경우,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막 생각한다. ‘내 남편의 흠은 뭐가 있지?’ 빨리 생각하자. 내 차례가 다가온다. 울 남편 너무 게으르다고 할까. 아닌데... 울 남편 매일 회사 그만두겠다고 징징대서 힘들다고 할까... 아닌데... 요즘 조용히 잘 다니는데.... 머릿속으로 쥐어짜면서 만들어진 남편 험담을 입 밖으로 내어 던진다. 귀가 후,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서 나는 슬프다. 남편의 맑게 웃는 얼굴이 하얀 천장에 둥둥 떠다닌다. 남편, 미안해.


가장 감당하기 힘든 캐릭터의 경우는, 모임에 도착하자마자 쏟아내듯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험담을 해대는 친구였다. 대화의 방향을 틀고 싶지만, 이미 열 올리며 사자후를 내뿜는 상대는 이미 내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보며, 딴청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만남을 주최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왜 아줌마들은 시댁욕과 남편욕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전업주부, 아줌마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매우 제한적이다. 집안일과 육아가 주축이라면, 시댁과 친정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이 부축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들로 하루가, 일주일이, 일 년이 채워진다. 관계 맺는 사람 또한 제한적이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친정가족, 시댁 가족 정도다. 가족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제한된 일만 하다 보니, 그 안에서 발생하는 ‘내겐 너무 무거운 일’을 그냥 묵묵히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쓰러지신 시어머니 간병이라는 일이,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업주부인 내가 1순위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전업주부에게 ‘나’로써 하는 일, ‘나’로써 사는 시간은 어느 영역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나 스스로를 포함하여 전업주부로 사는 여러 아줌마들에게서, 시나브로 지워진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흐려지는 나를 더욱더 공고히 확인시켜 주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시댁 가족이다. 대체로 아줌마들에게 욕먹는 시댁 가족은, 며느리라는 존재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요구하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권위적인 사람들이다. (모든 시댁 가족이 권위적이지는 않다. 며느리를 평등하게 대해주는 분들도 많다.) 그들은 며느리는 무조건 우리 가족의 문화, 습관, 삶의 방식에 맞추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들의 아들처럼 개별적 존재로 인정되지 못한다. 며느리는 우리 아들에게 속한 존재일 뿐, 며느리 개인의 생각, 취향, 생활방식, 그날의 컨디션은 일체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런 시댁 가족들은 안 그래도 삶의 마디마디에서 만성적으로 '존재 기근'에 시달리는 전업주부 아줌마들의 ‘나’를, 지우개로 확 지워버린다. 며느리에게는 그들이 ‘그 일을 시킨 것’ 그 자체보다, 나를 ‘그 일을 시켜도 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많은 경우 더 깊은 상처로 남는다.

시댁 가족들은 내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감당은 또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사장인데, 직원이 맘에 안 드는 경우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냥 해고하면 된다. 고민상담까지 해 가면서, 시달리는 내 마음을 공들여 달래어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댁 가족을 내가 어떻게 해고하겠는가. 어떻게든 감당하면서 살기 위해서 - 뒷담화라도 해야지.




나는 푸석푸석 생기 없는 얼굴로 만남에 나왔다가, 자신의 고민 이야기를 막 풀어놓고 가슴 후련해진 후, 얼굴의 생기를 얻어가는 아줌마들을 꽤나 보아왔다. 나도 그랬다. 막 털어놓고 싶었었다. 그리곤 다시 생의 에너지를 얻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를 혼자서 꾹꾹 누르며 감당해오다가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폭발하는 것보다, 그때 그때 나의 고민을 들어줄 상대와 함께 맞장구치며 뒷담화로 해소하는 것이 어쩌면 더 건강한 해소법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뒷담화란 상대적 약자인 존재들이 부정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게다. 대부분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은 이미 약자다. 시댁 가족이라는 권위적인 전통의 강자에게 며느리는 약자다. 기쎈언니 포스 뿜은 검은 매니큐어 바른 동네 아줌마에게 나는 약자다. 뒷담화를 그 사건 혹은 그 사람 때문에 매우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한, 익숙하면서도 효과적인 하나의 해결법으로 받아들이면, 상대가 좀 더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 Tip1 : 같은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 상담은, 고등학교 친구들 등의 저~~~기 멀리 사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좋다는, 고민상담(뒷담화) 15년 차 아줌마의 조언.


- Tip2 : 만남마다 매번 반복되는 문제를 하소연하는 사람 대처법 - 없다. 왜냐면, 그녀의 삶에서 그 문제가 가장 큰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안 만나거나, 그냥 그녀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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